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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18. 10:44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6

큰솔나리 | 솔잎을 닮아 솔나리. 대가리가 커서 큰솔나리. 우리는 음식맛이 좋은 식당을 찾아 먼 데까지도 간다. 입맛을 위해서다. 어떤 때는 좋은 귀맛을 찾아 음악회에 가고 큰 돈을 들여 고급 음향기기를 구입한다. 심심풀이로 남의 귀한 목숨을 빼앗는 철없는 자들, 손맛을 위해 낚시를 한다는 잔인한 자들도 있다. 입맛 귀맛 만큼이나 중요한 맛이 있다. 조금은 낯선 말이겠지만 눈맛이다. 눈요기라는 말이 있다. 눈으로 요기한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그런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재발견해서 표현하는 일이 사진이다. 사진가는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눈맛을 더 즐길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음악을 들을 줄 모르는 청각장애인. 눈 멀뚱히 뜨고 못 된건 다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모르는 ..

2018. 9. 11. 10:10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5

하늘매발톱꽃 | 얼큰, 3등신도 못 되지만 이쁘다. 얼큰, 이쁘다. 잎도 없이 어떻게 이런 실한 꽃을 피워냈을까. “풍속 제로, 바람없이 맑겠습니다.” 그것은 기상관측 용어일 뿐이다. 알릴듯 말듯 꽃을 흔들어대는 바람은 풍속계가 감지 할 수 없을 만큼이다. 렌즈와 매발톱꽃과의 거리는 약 40cm. 숨조차 쉬지 못하고 파인다에 집중한다. 아래에서 윗쪽으로 기계를 설치하면 낮게 엎드려 코를 땅에 박아야 한다. 적을 향해 총을 겨누듯 하는 긴장감. 그러나 바람과의 대결은 아니다. 대화다. 설레는 기다림이다. 키는 꺽실하고 머리는 무거워서 매발톱꽃의 흔들림은 유난히 야단스럽다. 그래도 바람은 어느 때인가 멎는다. 바람은 잠시 쉬어 가는 때가 있다. 지나가던 바람이 다리쉼을 하는 그런 때를 틈타 조리개를 열고 닫..

2018. 9. 4. 09:49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4

칼잎용담 | 용담과는 식성도 성격도 사는 곳도 비슷한데 잎만 조금 다르다. 용담과 칼잎용담은 구별하기 어렵다. 이름도 비슷하고 모양도 비슷한 용담이 여러 가지라서 알아내기 아주 어렵다. 다닥냉이, 콩다닥냉이, 물냉이, 황새냉이, 는쟁이냉이, 말냉이, 좁쌀냉이, 싸리냉이. 자세히 구별할 필요 없다. 아무 냉이나 캐서 무쳐 먹거나 된장국 끓여 달게 먹을 수 있다.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숲바람꽃, 세바람꽃, 만주바람꽃, 변산바람꽃. 바람꽃도 참 많다. 난초의 종류도 엄청 많아 책 한 권이 넘친다. 꽃이름 몇 가지 안다고 잘난 척 하지 말자. 분류학자 흉내내며 아는 체하지 말자. 제비꽃하고 바람꽃하고 알아보면 된다. 사진쟁이는 꽃들과 눈맞아 정을 통해야 한다. 사진쟁이는 꽃이름보다 그들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2018. 8. 28. 10:56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3

용담 | 뿌리의 약효가 용의 쓸개보다 좋다고? 용도 없는데…. 산에서는 아침을 잘 먹고 점심을 잘 먹고 저녁을 잘 먹고 그래야 한다. 집에서도 그렇게 잘 먹어야 한다. 산을 오르고 내리고 사진 찍는 일. 정신, 육체 노동에 막대한 에너지를 요한다. 정신력의 한계는 체력으로 극복한다. 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잘 먹어야 한다. 동네에 내려와서 혼자 먹기 싫거나 돈 아까울 때나 바쁜 세상을 살다보면 가끔씩 끼니를 거를 때도 있지만 산에서는 한끼도 안 거른다. 나는 과식주의자다. 밥도 남들보다 많이 먹는다. 그래야 중장비 메고 여러 날 산을 뛰어 다닌다. 우리 주치의 선생님 임은철 원장님. 고지혈환자 과식하면 큰일난다고 진료 때마다 겁주시지만 중국에서 돌아오는 날 또 삼각산 갈 수도 있는데 조금 먹고는 산에 ..

2018. 8. 21. 10:10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2

삼지구엽초 | 세 줄기에 잎이 아홉 개, 하여 삼지구엽초. “남자의 생식기가 능력을 상실하여 잘 일어서지 못하거나 어쩌다 일어났더라도 오래가지 못 하고 주저앉아 버릴 때 이 삼지구엽초를 그늘에 말려 음양곽으로 만든 다음 술에 불궈 아침저녁 반주로 한 잔씩 마시거나 그늘에 말리워 고르롭게 가루내어 따뜻한 물에 녹차 마시듯 하루에 수 차례 장복하면…” 조선글로 된 〈묘방전기〉라는 중국책에 있는 글이다. 얼마 전까지도 설악산 오대산에 떼지어 여기저기 이 삼지구엽초들이 살고 있었는데 비와구라가 없던 시절이라서 그랬던지 유통기한 지난 자지도 재활용 해보자고 그랬던지 . 죄다 몰려가서 뿌리까지 캐먹는 바람에 지금은 찾아도 볼 수가 없다. 씨가 마른 듯 하다. 비슷하게 생긴 개구엽까지 뜯어먹고 거시기가 완전히 망..

2018. 8. 13. 20:59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1

바위구절초 | 바람은 함부로 부는 게 아니다. 그렇다. 바람이다. 빛이다. 그래서 자연은 風光이다. 고산화원을 저렇게 피워내는 것은 빛이고 바람인 것이다. 풍광으로 살아난다. 백암봉으로 몰아친 四方風은 화산돌을 하늘로 날려 보내버렸고. 자동차 문을 못 열어 차에서 내릴 수 없게 했다. 흑풍구에서는 유람질하던 어떤 이는 바람에 떠밀려 절벽 아래로 날아가 버렸다. 나, 사진 못 찍겠다고 삼각대 접었다. 그런데 이 구절초들은 며칠 밤낮을 위에서 아래로 아래서 위로 미친 바람이 잠시도 쉬지 않고 흔들어대도 맨몸으로 받아내고 끄덕도 없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간절한 소망인 것이다. 그렇게 열매를 맺으면 바람은 또 한번 구절초의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줄 것이다. 그 바람은 함부로 부는 게 아니다. 꽃들을 위해서 ..

2018. 8. 6. 14:08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30

서백두 | 하늘이 검푸르게 빛나는 어느날 어느 순간 햇빛에 반사되는 산정은 눈 보다 희게 빛난다. 백두산은 눈이 없는 여름에도 흰머리산이다. 흰눈이 쌓여서 그 이름이 백두산이라면 그 숱하게 많은 만년설의 고산은 죄다 백두산 아닌가. 백두산은 만년설로 희게 보일만큼 높지도 않다. 먼 옛날 화산폭발로 천지 주변은 칼데라 벽이 병풍처럼 멋진 풍광을 이루면서 이 때 생긴 암석은 주로 회백색, 자회색의 거품돌들이다. 바람에 날리거나 천지 물 위로 떠다니기도 하는 이 부석 때문에 산은 그렇게 희게 보일 때가 있다. 천문봉의 옛이름도 흰돌이 많아 백암봉이다. 1751년 갑산 부사 이의철의 “백두산기”에도 ‘ 이 산을 백두라 부르는 것은 산 위의 백암봉 회백색 부석이 멀리서는 희게 보인다.’ 고 했다. 한여름, 산 아..

2018. 7. 30. 10:47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29

잔대 | 해질녘, 노을을 등지고 서면 누구나 천사처럼 보일 수 있다. 백남준 선생을 세계적인 예술가라고들 받들어 뫼시는데 나는 그 예술이라는 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분 생각이 어떤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마치 고물상처럼 병든 텔레비들을 죽 늘어놓고 이상한 화면들이 신경질적으로 왔다갔다하는 거 암만 보아도 나는 시각에 장애가 있는지 알아볼 수도 없고 나는 청각에 장애가 있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다. 그걸 예술이라고 대단하다고 감동적이라고 침을 튀기는 사람들이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혹시 벌거벗은 임금님의 누드쇼를 보고도 의상을 칭찬하던 그 한심한 놈들과 비슷한 분들 아닐까? 백남준 아트센터라는 데도 몇 번 가서 무언가 느껴 보려 했지만 저 세상에 계신 백남준 아티스트 선생께 나의 무..

2018. 7. 23. 12:34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28

천지 야영 | 산짐승처럼 마구 뛰어다니며 사진도 찍었다. 황소처럼 힘이 좋고 우직한 사진쟁이 연변의 고철기 동무가 위암 수술을 했다. “고 동무, 나랑 산에 가자. 산에 살면 모든 병이 다 나을 수 있다. 백두산 가자.” 이제 조금씩 회복중인 그가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나를 따라 나섰다. 그를 환자 취급하면 안 된다고 짐을 잔뜩, 육십 근 정도 지게 했다. 꿈을 되찾으라고, 힘 내라고 그의 카메라도 모두 가져가게 했다. 산짐승처럼 아무데나 마구 뛰어다니며 맑은 물, 밝은 바람 먹고 한 달쯤 살았다. 구름이 몰려다니면 사진도 찍었다. 고 동무, 내려올 때는 짐을 더 많이 지고 껑충껑충 뛰어 내려왔다. 절망은 버리고 희망과 자신감으로 배낭 가득 채워서…. “선생님, 꿈만 같아요. 살 것같아요. 다시는 산에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