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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7. 11:56

프랭크를 애도하며

프랭크를 애도하며 20세기 사진사의 거인 - 로버트 프랭크 영원히 잠들다 글 : 김승곤 (사진평론가, 국립 순천대학교 前 석좌교수) 그림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사람도 피카소 이름 정도는 안다. 사진 분야에서도 상식으로서 기억해두어야 할 이름이 몇 있다. 지난 20세기에 꼭 알아야 할 사진가 다섯 명을 들라면, 그 중 한사람이 바로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그리고 1958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 「The Americans」다. 전후 미국인의 삶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담은 스냅사진으로 사진사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로버트 프랭크가 지난 9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그는 승전 분위기와 ‘미국몽’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미국사회의 그늘진 뒤안길의 빈곤과 인종차별, 소외라는 문..

2018. 12. 8. 00:55

#65. 김승곤의 사진읽기 - 느려서 좋은 것

ⓒ 김명호 ‘질주하는 말의 네 발이 지면에서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가’를 두고 내기를 건 재미난 미국인들 얘기를 전에 소개해드렸지요. 인류가 야생의 말을 길들여서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약 4천여 년 전, 하지만 달리는 말의 네 발이 떨어진 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3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처음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지요.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을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인간의 눈은 의외로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성립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간(움직임)의 길이는 얼마쯤일까요? 인디언들은 더 빠른 것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대략..

2018. 9. 16. 08:00

#64. 김승곤의 사진읽기 - 청초하고 화사한 코스모스

그 끈질긴 장마와 폭염도 계절의 변화에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아침저녁 공기가 제법 선선해졌고, 하늘은 푸른 가을 빛이 가득합니다. 가을이 되면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이 코스모스. 장미나 튤립도 예쁘지만, 진달래나 코스모스처럼 화순이 얇은 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연약함에 대한 연민 때문일 겁니다. 상처받기 쉬운 것은 그만큼 더 순수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라틴어의 ‘질서 잡힌 우주’라는 어원을 가진 이 꽃의 꽃말은 ‘소녀의 순결한 사랑’이랍니다. 왜 그런 꽃말이 생겼는지 납득이 가지요? 멕시코가 원산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푸른 가을하늘에 제일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시골의 길섶에 핀 화사한 코스모스를 보면서 ‘아,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더라면…’하고 후회한 적 있으시지요? 금년 성묘 때는..

2018. 9. 15. 11:18

#63. 김승곤의 사진읽기 - 훅 불면 사라져버릴 듯한…

ⓒ 채희술 파랗게 갠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태양광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걸어오는 사람들의 그림자로 보아서 오후 두세 시쯤 되었을까요? 저 멀리서 하늘과 땅을 가른 푸른색 띠처럼 생긴 부분이 바다인지 아니면 길다란 섬인지 도대체 구별이 안 됩니다. 넓은 공간에는 하늘과 땅과 열댓 명의 사람들만이 있을 뿐 어디를 둘러보아도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마치 꿈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빠지고 맙니다. 진짜 사람들이 맞는가요? 관광 팜프렛에 인쇄된 사진을 오려서 형광색이 나는 창백한 종이 위에 붙여 놓은 듯한 크고 작은 사람들은 입으로 ‘훅’하고 불면 순식간에 어디론가 전부 날아가버릴 것 같은 생각이 ..

2018. 9. 9. 07:00

#62. 김승곤의 사진읽기 - 이상한 바다풍경

ⓒ 허준평 사춘기 소년이 아닐지라도, 훌쩍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어딘가 바다로 가서 한산한 어촌의 소금기 도는 바람 냄새를 맡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파랗게 갠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라도 떠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여기 그런 사진이 한 장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화면 위쪽의 견고한 철골 구조물과 거기 메어서 아래로 무겁게 늘어뜨려진 두꺼운 천으로 된 끈이 ‘폭력적’으로 사진에 개입하고 있군요. 보통은 평화로운 분위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이런 이물질은 아예 화면에 넣지 않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경우에는 찍고 나서 나중에 포토숍으로 지우거나 색깔을 바꿔서 거짓말 사진을 만들기도 하지요.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던 것은 그림엽서 같은 바다였는..

2018. 9. 8. 11:20

#61. 김승곤의 사진읽기 - ‘적정’은 무조건 좋은 것인가?

ⓒ 김선호 사진을 찍을 때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 알고 계시지요? 1. 구도, 2. 초점, 3. 노출, 4. 색온도(화이트 밸런스), 5. ISO입니다. 번호는 붙여 놓았지만, 이 중 어느 것 하나가 잘못되어도 사진을 망치게 되니까 번호는 중요한 순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노출이나 색온도가 아무리 잘 맞았더라도 구도가 좋지 않거나 초점이 안 맞아 있으면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또는 초점이 잘 맞이 있다고 할지라도 노출이 맞지 않았다면 결과는 마찬가지 실패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노출이나 초점 같은 기술적인 문제들은 카메라가 전부 알아서 모든 것을 ‘적정’으로 만들어줍니다. 디지털이 되면서 웬만한 카메라에는 정도가 높은 AE(Auto Exposure), AF(Auto F..

2018. 9. 1. 19:46

#60. 김승곤의 사진읽기 - 사진은 뺄셈?

창덕궁에 들어서면 위풍도 당당한 진선문이 오른쪽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멋지게 곡선을 이룬 기와지붕 위로 펼쳐진 10월의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떠있습니다. 화면 구도도 단정하고 교과서처럼 모범적인 사진입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화면 네 귀퉁이에 렌즈 셰이드로 인해서 비네트(vignette)가 생겨버렸네요. 대개는 찍고자 하는 피사체를 화면의 중앙에 놓고 초점을 맞춰서 그대로 셔터를 누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피사체이니까 거기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 같은 데서도 주연배우만으로는 스토리가 꾸며지지 않는 것처럼 사진에서도 주역 못지 않게 조연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화면 구석구석을 아주 주의 깊게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에는 성능이 좋은 줌 렌즈 하나만을 사용..

2018. 8. 19. 19:30

#59. 김승곤의 사진읽기 - 놓친 물고기는 항상 크다

ⓒ 김용흠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거의 얼굴이 가려질 만큼 커다란 플라스틱 병정 인형을 들고 있습니다. 그 병정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총구를 위쪽으로 향해서 막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치 병정과 함께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인형 다리를 붙잡고 있는 여자 아이의 왼손 손가락에도 힘이 꽉 들어가 있습니다. 병정의 팔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눈망울로 보아서 무척 귀여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인형이 얼굴을 가리고 있네요. 아마 낯 모르는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여대니까 겸연쩍고 수줍어서이겠지요. 화면 왼쪽의 흰 색 파라솔과 붉은색 티셔츠, 그 옆의 관광객 무리, 같이 온 사람의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주는 걸까요? 오른쪽의 여성이 절묘한 구성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평선이 왼쪽으로 ..

2018. 8. 19. 10:02

#58. 김승곤의 사진읽기 - ‘토끼 눈’을 잡으려면

모처럼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거실 소파 위에서 재롱을 떠는 손주 녀석이 너무 귀엽습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와서 아기 눈높이에 맞춰서 사진을 찍습니다. 광량이 충분하지도 않고 아이의 움직임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플래시를 썼습니다. 초점이나 노출도 잘 맞았고, 표정도 움직임도 아주 좋은 순간을 잘 잡았는데, 예쁜 아이 눈동자가 그만 토끼 눈처럼 빨갛게 나왔네요. 사진을 본 아이는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혹시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어두운 곳에서 정면을 향해서 갑자기 플래시를 터뜨리면, 활짝 열린 동공을 통해서 들어간 강한 빛이 망막에 분포된 모세혈관에 반사되어 눈동자가 빨갛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에서는 이것을 적목 현상(red eye effect)이라고 부릅니다. 색깔은 다르지만 애완동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