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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24. 21:23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50

족도리풀 | 족도리풀이 스무 가지쯤 되는데 네 이름은 뭐니? 너는 무슨 족도리냐? 족도리풀. 넓은 잎 아래 숨은 듯 피어난다. 땅색의 꽃이 땅에 없는 듯 피어난다. 중국말로는 세신이라 하고 뿌리는 가래를 없애주고 두통 치료에도 쓰인다. 사진을 찍으려면 코를 땅에 박아야 한다. 불룩나온 배를 땅에 찰싹 붙여야 한다. 그럴 때면 언제나 땅냄새를 맡는다. 부드러운 흙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 일 모두 끝내고 떠나면 아직 쓸모 있는 내 몸뚱아리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나머지 껍데기는 불태워 재로 만들어서 향기로운 흙 속에 스며들겠지. 흙과 함께 숨쉬러 흙으로 돌아가겠지. 화인다 들여다보다 힘들고 지칠 때 내가 돌아갈 포근한 땅에 뺨 부벼 본다. 大地의 부드러움과 향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2018. 12. 18. 07:52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49

흰술패랭이 | 우리말 사랑은 이오덕 선생님이 세종대왕보다…. 흰술패랭이, 우리말 이름. 세월이 흘러 이제는 한자말 쓰면 무식한 놈이다. 중매쟁이는 커플매니저라 해야 좋아라 하고 미용사 이발사는 어느새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분장사는 또 메이크업 아티스트된지 오래다. 식당은 싸구려 음식 먹는 데고 레스토랑은… 촌구석애도 예식장은 망하고 웨딩홀만 흥한다. 사진쟁이는 자칭 포토그래퍼가 된 놈들도 있다. 정신나간 허깨비들은 전국민이 영어를 해야 빠다를 얻어 먹고 살 수 있다고 헷소리를 해댄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갓난쟁이 햇아에게까지 영어를 하라고 울부짓는 불쌍한 에미도 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영어로만 치루었다는 얼도 빠지고 씰개도 빠진 마구잡이 학교도 있다. 미국의 52번째 코리아주가 되기를 속으로 절실..

2018. 12. 9. 19:34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48

얼레지 | 피어나려 할 때가 희망이다. 우리들 인간도 그렇다. 아주 오래 전에 사진을 배운다고 찾아온 어떤 놈이 있었다. 짐을 잔뜩 지워 산에 데리고 가서 텐트 치게 하고 물 떠오고 밥 시키고 며칠 그냥 그렇게 살다가 내려왔다. “선상님, 왜 사진을 안 찍습니까?” “야, 이눔아. 찍을 게 있어야 찍지.” 다음번에도 산에 가서 또 그랬다. 산에 사는 게 재미가 없고 힘들었던지 몇번 그러다 그냥 그놈은 가버렸다. 그의 서두르는 마음으로는 제대로 사진을 할 수 없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진을 배우는 데 평생을 바칠 수 있는 그런 人間이 못 될듯 했다. 먼저 산을 알고, 꽃을 알고, 빛을 알고 왜 사진을 하는가도 알고 난 후에 카메라를 알고 필름을 넣어야 하는데 그의 운명은 산도 사진도 아닌듯 조급해 하다가 ..

2018. 12. 8. 00:55

#65. 김승곤의 사진읽기 - 느려서 좋은 것

ⓒ 김명호 ‘질주하는 말의 네 발이 지면에서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가’를 두고 내기를 건 재미난 미국인들 얘기를 전에 소개해드렸지요. 인류가 야생의 말을 길들여서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약 4천여 년 전, 하지만 달리는 말의 네 발이 떨어진 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3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처음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지요.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을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인간의 눈은 의외로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성립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간(움직임)의 길이는 얼마쯤일까요? 인디언들은 더 빠른 것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대략..

2018. 12. 4. 10:45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47

월귤 | GPS GUIDE 1844m N41′ 55 55.5″ E128′ 04 47.1″ 거기에 산다. 나의 길앞잡이 GPS. 두 개의 작은 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찾는 꽃이 있는 데까지 나를 데려다준다. 월귤 하얀 꽃이 어쩌면 이렇게 탐스러울까 가을에 빨강 열매들 보러 어떻게 다시 찾아오나? 숲속에 개불알꽃이 무더기로 시들어버렸는데 내년 봄에 이 참나무숲을 어떻게 헤매나? 그냥 지나다 만나면 찍고 없으면 안 찍고 사진은 그렇게, 되는대로 하는 게 아니다. 사진은 과학이고 기획이며 계획이다. 그래서 GPS는 이제 렌즈만큼이나 중요하다. 수림한계선을 넘으면 목표물은 아무것도 없다. 안개가 짙어지고 바람이 거세게 몰려오면 낯익은 우리캠프로 다시 돌아가기도 어렵다. 만주벌판의 숲속길은 거미줄과도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