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김승곤의 사진읽기 - 느려서 좋은 것

ⓒ 김명호

 

 

‘질주하는 말의 네 발이 지면에서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가’를 두고 내기를 건 재미난 미국인들 얘기를 전에 소개해드렸지요. 인류가 야생의 말을 길들여서 타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약 4천여 년 전, 하지만 달리는 말의 네 발이 떨어진 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130여 년 밖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메라가 처음으로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었지요.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을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인간의 눈은 의외로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성립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간(움직임)의 길이는 얼마쯤일까요? 인디언들은 더 빠른 것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대략 1/125초 정도가 한계라고 합니다. 요즘 카메라는 1/8000초라고 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셔터속도로 찍을 수 있습니다. 날아가는 총알까지는 몰라도, 그만 하면 전속력으로 달리는 우사인 볼트의 발의 근육의 움직임까지도 선명하게 고정시켜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카메라 덕분에 인간의 시각이 엄청나게 확장된 겁니다.

 

느려서 좋은 것도 있습니다. 장시간 노출로 찍은 밤하늘의 성좌, 흐르는 구름, 작은 물결 하나도 일지 않는 고요한 바다, 여름의 밤하늘을 가르는 번개, 바람에 살랑대는 풀이나 나뭇잎,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테일라이트….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계곡을 흐르는 물을 장노출(long exposure)로 찍은 사진입니다. 셔터를 얼마나 길게 열어주는가는 표현의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으로 시도하신다면, ISO를 최대한 낮추고 1/30~1/4초에서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아, 그리고 장노출일 때는 특히 삼각대와 ND필터가 필수라는 것 잊으시면 안 됩니다.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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