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48

얼레지 | 피어나려 할 때가 희망이다. 우리들 인간도 그렇다.


아주 오래 전에 사진을 배운다고
찾아온 어떤 놈이 있었다.


짐을 잔뜩 지워 산에 데리고 가서
텐트 치게 하고 물 떠오고 밥 시키고
며칠 그냥 그렇게 살다가 내려왔다.
“선상님, 왜 사진을 안 찍습니까?”
“야, 이눔아. 찍을 게 있어야 찍지.”


다음번에도 산에 가서 또 그랬다.
산에 사는 게 재미가 없고 힘들었던지
몇번 그러다 그냥 그놈은 가버렸다.
그의 서두르는 마음으로는 제대로
사진을 할 수 없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진을 배우는 데 평생을 바칠 수 있는
그런 人間이 못 될듯 했다.


먼저 산을 알고, 꽃을 알고, 빛을 알고
왜 사진을 하는가도 알고 난 후에
카메라를 알고 필름을 넣어야 하는데
그의 운명은 산도 사진도 아닌듯
조급해 하다가 일년도 못하고 그냥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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