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신제섭 - Lives on the Road展

[전시안내] 신제섭 - Lives on the Road展

* 장소 : 류가헌 

* 기간 : 20201020() ~ 111()

* 오프닝 : 1020일 화요일 6

 

 

 

신제섭 <Lives on the Road>

 

 

어떤 사진은 나에게 즉각적으로 열기에 대한 추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나는 내 몸이 천천히 그을린다는 인상을 받고, 내 발밑의 모래는 너무 뜨겁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약간의 그늘이라도, 이 경우에는 사진의 그림자들이라도 나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_ 에르베 기베르 <유령 이미지> 중에서

 

사진가 신제섭의 <Lives on the Road> 사진들을 볼 때 떠오른 문장이다.

 

검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언덕 위에 선 인물과 한 마리 낙타 위로 수많은 별무리가 흩뿌려져 빛나고 있다. 검은 실루엣이지만 뒤로 살짝 젖혀진 인물의 머리 각도로 인해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길이가 가늠된다. 직사각형의 사진 프레임을 벗어난 아득한 지점으로, 사진을 보는 이의 시선도 연장된다. 흰 별빛과 청록색 허공의 온도로 인해 체온도 살짝 내려가는 듯하다.

 

주홍빛 석양을 하늘과 반씩 나누고 있는 갠지스강물 위, 늙은 사공이 노를 젓는 작은 배가 지금 태우고 있는 것은 사진가가 아니라 이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다. 멀리 수평선 가까이에서 해와 윤슬 사이를 가르며 지나는 배를 눈으로 쫒다보면, 일렁이는 물결을 따라 몸이 출렁 기울기도 한다.

 

길 위의 삶이라고 해석될 사진 시리즈의 제목 <Lives on the Road>, 중의적이게도 이 사진 속의 길 위에 우리를 세우고, 느끼고 체험하며 살게 한다. 우리가 미처 가보지 못했거나 언젠가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바로 그 길 위에.

 

사진가이자 광주의 사진갤러리 혜윰의 대표이기도 한 신제섭은 2014년부터 중국,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오지와 소수민족의 생활터전을 찾아다녔다. ‘잃어버린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문명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소수민족들의 삶과 풍경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였다. 낯선 이국의 풍경들을 숱하게 만났지만, 소수민족들의 삶의 모습에서 이제는 잃어버린 어린 시절 낯익은 고향의 서정을 느끼기도 했다.

 

<Lives on the Road>의 사진들은 그 노정에서 얻어졌다. 이번 전시는 대구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와 류가헌의 교류전이자 동명으로 발행된 사진집 출간을 기념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사진집에는 총 99점의 작품이 담겨 있으며, 24x28cm 양장본, 183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는 1020일부터 2주간 이어진다. 전시장에서 사진집 <Lives on the Road>가 작가 사인본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문의 : 02-720-2010

 

 

 

 

 

 

< 작업노트 >

누구나 가슴에 품고 사는 잃어버린 시절이 있습니다. 저녁이면 밥 짓는 냄새, 냄새를 따라가면 네 집 내 집 없이 저녁도 얻어먹고, 집집마다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던 사람들. 더 많은 감각들과 함께 살아가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익숙한 냄새와 그리운 소리가 함께 따라옵니다. 입 안 가득 머금던 따뜻한 밥알의 느낌에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현대는 화려한, 시각만의 세계입니다. 획일화된 높은 건물 속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지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처럼 그저 '발전'에만 급급해 더 많은 물질을 만들어내기 위해 살아갑니다. 옆집의 밥 짓는 냄새도 넘어오지 않고 아이의 울음소리라도 넘어오려고 하면 민원의 대상이 됩니다. 서로가 섞여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세계에서 너무나 멀어졌습니다. 사람의 정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저는 바로 그 잃어버린 시절의 순간을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를 때면 긴 호흡을 참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감각들을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보는 순간,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시절의 냄새, 소리, 촉감을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렸지만, 아직은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우리 어머니 시대의 사람 냄새나는 정을 담아봅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도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저런 삶이 있었는데... 머지않아 이곳도 문명화가 되겠지...

 

실제로 몇 해 전, ‘하늘은 사흘 맑은 날이 없고(天無三日靑), 땅은 삼리 평편한 곳이 없고(地無三里平), 사람에게는 돈 서푼이 없다(人無三分銀)’는 중국 귀주를 찾아갔을 때, 2년여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미 관광지화 되어버리고, 그들의 전통적인 삶을 잃어버리고 관광 상품화되어버린 안타까움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자연보다는 자연을 닮은 '사람들'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소수 민족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공산품으로 개성까지 찍어내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자연에서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지요. 자연의 색으로 옷을 지어 입고 자연에서 짜낸 빛깔로 물든 사람들을 보며 과연 인간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나 마천루, 기계 같은 것들에서 우리는 결코 우리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만으로 만들어낸 허상이 있을 뿐이지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려면 바로 그런 것들을 걷어낸 우리, 무위자연에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봐야만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각 지역의 소수 민족들을 통해서, 또한 다양한 민족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들, 잃어버릴 시간들, 그 시간을 찾아 떠나봅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의 그러한 시절을 담은 세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근원을 담은 세계가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사라져가는 문화들의 단순한 '기록'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 곳을 다니며 느꼈던 삶의 흔적들, 고단함 속에서도 평안을 느낄 수 있게 한 '사람'의 냄새, 문화를 찍어내는 것이 아닌 손끝으로 하나씩 만들어가는 정성에서 느끼는 따뜻함,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우리가 잃어버린 진정한 삶이 여러분 안에 되살아나 각박한 현대를 살아가는 여러분께 잠시나마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신제섭 <Lives on the Road>

 

 

 

신제섭 <Lives on the Road>

 

 

 

신제섭 <Lives on the Road>

 

 

 

 

신제섭 Shin Jeseop

 

내 삶에서 사진 생활의 시작은 40여 년 전, 한창 감성이 풍부한 대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사회적,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그 당시 나의 사진작업 기간은 그리 길지 못하였다. 그리고 30여년이 흐른 후, 다시 잡은 카메라. 지난 30여년의 삶을 돌아보고 지나가버린 그 삶이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진하게 다가왔다. 사라져버린 정감 있는 사람들, 그 삶의 모습들 이제는 볼 수 없다. 결국 내 사진의 방향은 잃어버린 순간들이라는 주제 속에 자연스럽게 문명화 되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다. 그래서 찾아다닌, 아직은 문명화의 물결이 스며들지 않은 오지의 소수민족들의 삶. 그들의 삶과 문화를 통해서 우리 어머니 시대의 사람 사는 정감 있는 냄새를 풍겨내고 싶다.

잃어버린 사람들이란 주제로 여러 소수민족들의 삶과 문화를 소개하는 개인전을 수 회 하였으며, 사진학 석사로, 지금 현재는 사진전문 갤러리 혜윰의 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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