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일기쓰기 #23

7월의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 사진, 글 : 김문경

 

우리 일행은
아침 8시에 팔당역을 출발하여
오전 11시경 인제 원대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자작나무 숲으로 걸어가며
나는 친구에게 길가에 서 있는 흰 자작나무에
검은 무늬처럼 점점이 불규칙하게 박혀있는
검은 점을 가르키며 물었다.

" 친구야, 저 검은 점박이는 왜 생기지 ? "

" 그건 나뭇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야 !
자라다가, 햇볕을 받지 못하는 가지는 떨어져 나가지,
그 자리에 다시 가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상처야.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일부분을 잘라내고
태양의 사랑을 먼저 차지 하려고
위로 위로 뻣어가기 위한 일종의 자해행위지.
잘라내어야만 키가 크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확보 할 수 있어.
다른 나무가 햇볕을 독차지 하고
먼저 위로 뻗어 올라가 햇빛을 가릴려고 하면
가지를 스스로 잘라내고 위로 올라가는 거야.
우리 눈에는 평화스럽게 보이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의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지. "

난, 친구의 설명을 듣고,
" 내가 얼마나 무심히 사물을 보고
그냥 지나쳐 왔는가 ? "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 나무는 성장하기 위해
자신을 저토록 아프게하며 성숙하는데
우리 인간은 별것 아닌 상처에도
견뎌내지 못하고
좌절하고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 "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상처 만큼 성숙한다는 말도
가슴 아픈 상처를 견뎠기 때문이며,
그 상처가 발효되고 
상처의 끝자락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싹트는 것은 아닐까 ?

자작나무의 상처를 생각하며
한 시간 반쯤 걸어 올라갔을때
모두가 쭉쭉 뻗어 올라간 자작나무 숲을 보고
탄성을 자아냈다.

너무 희고, 신선하고,
높고, 곧고, 푸른 나머지
어떤 신령스런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우리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을 잊고,
자작숲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었다.

자작나무 숲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전에 밑줄을 긋고 읽었던
백석시인의 시를 암송도 해보며
자작나무를 닮은 그의 영혼이
이번 여행중에라도 나에게 스며들었으면 했다.

또, 나란 나무의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가슴 속에서 희망의 싹을
다시 한번 피워 올려
자작나무들처럼 위로, 위로 뻗어 올라가
푸른 하늘을 향하여
마음껏 손을 흔들며 기쁨의 춤을 추다
미련없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자작나무 잎새에 나를 대입시켜 보았다.

자작나무 껍질은
마치 아름다운 여인에게 입히고 싶은
포실포실하고 부드러운 실크 같았는데
잎의 푸르름이 살짝 물들어 있는
흰색이 싱그럽고 깨끗해 보였으며
푸른 색의 신비함이 듬뿍 묻어 있는 것만 같아
백석시인이 좋아했던
'갈매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였다.

詩속의 하얀 눈과
갈매나무를 떠올리는 순간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
다시 한 번 자작나무 숲속으로 들어와
스스로 외롭고, 쓸쓸한 한 그루의
'갈매나무' 가 되어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났다.

[ 눈을 맞고 외로히 서 있는
곧고 정한 갈매나무 ..... ]

눈덮힌 자작나무 숲을 거니는
어느 외로운 영혼처럼 
따뜻한 구스다운 점퍼 속에 묻혀있던 가슴에서
안개처럼 하얀 입김을 피워 올리며
하이야니 눈을 맞으며 서 있는 '갈매나무'가
잠시 되어 보는 것이다.

또, 눈 내린 숲속에서 소리내어
백석의 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한 번 읊어보는 것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한 여인을 사랑하면 눈이 내린다 ?
기상학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말도 않되는 詩가
아름다운 詩의 으뜸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왜, 백석시인을 좋아하죠?"

"어느 날, 우연히 시집에서
그의 詩를 보고 읽다가
가슴 속에 슬프고도 아름답고
외롭고 뭉클한 것이
자작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처럼
다가왔기 때문이지. "

난, 산골 마을에서 눈이 푹푹내리고
자작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피고,
국수와 수육을 삶는
육수국 끓이는 김이 자욱한
허름한 산골 국수집에서
쩔쩔 끓는 방구둘에 앉아
따끈하게 소주를 마시면서
털도 안 뽑은 끓는 방구둘에 앉아
따끈하게 소주를 마시면서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 국수에 척 얹어서
한 잎에 꿀꺽삼키는 詩人이
친구처럼 다가 오는 상상을 하면서
7월의 싱그러움을 가슴 가득히 마시면서
자작나무 숲속을 기분좋게 걸어 갔다.

 

 

 


" 아 ~ 좋아, 끝내준다 "

" 신령스럽다. "

" 정말 그러네. "

" 자작나무 숲속에서는 자일리톨껌이 최고 ! "

" 나도 한 개 줘봐 ! "

"재료가 핀란드에서 들어 온다 더라."

" 핀란드산 자작나무 합판이 아주 좋다더라. "

우리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울창하고 시원하고 빽빽하게 뻗어 올라간
자작나무 숲 속 깊숙히 걸어 들어갔다.

한 친구가 점심으로
메밀국수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는 옛날 백석이 살던
함경도 산골에는 자작나무도 많았고
또 기름기가 많은 자작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메밀국수를 삶았다는 것은 몰랐을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메밀국수 생각에 군침 돌았다.
우리는 백담사 근처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맛있는 메밀 국수집을 좀 알려 달리고 물었고
" 예당 ' 에 들려 수육, 메밀국수,
메밀전병을 차례로 즐겼는데
그 맛이 넷이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그리고 등산백에 넣고 온
페트병에 담긴
나의 종달새가 담근 12년된 두송주를
물컵에 따라 넷이서 몰래 마셨는데
맛이 황홀하여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행복감이
따뜻하게 밀려 오는 것 같았다.

눈을 지긋히 감고
두송주가 전해준 온기를 느끼며
이런 것이 남은 삶의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백석시인의 기억을 살려내어
그의 영혼과 함께 자작나무 숲을 걸어보며 ,
그가 좋아했던 시커먼 메밀국수와
도야지 수육과 소주를 즐기며,
지금 '예당' 이란 이름난 막국수 집에서
자작나무와 막국수를 즐겨 보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

 

 

 


시골마을의 선술집 불빛아래
고요히 졸고있는 자작나무가
불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저녁노을이 게으르게 돌아 다니며
또 다시 은가루를 나뭇가지에 뿌리는 곳.
온통 눈덮힌 자작나무로 끝이 없는 곳.
눈을 흠뻑 맞은 외롭고 쓸쓸한 겨울 나그네가
선술집을 들어서며 외투에 나린 눈을 털어내며
굵직한 소리로 말했다.

 

 

 


보드카 주시요 !
변해 버린 고향마을의 선술집을 찾아온
詩人 세르게이 에세닌이 였다.

 

 

'사진으로 일기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으로 일기쓰기 #25  (0) 2018.01.10
사진으로 일기쓰기 #24  (0) 2018.01.08
사진으로 일기쓰기 #22  (0) 2018.01.04
사진으로 일기쓰기 #21  (0) 2018.01.03
사진으로 일기쓰기 #20  (0) 2018.01.02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