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27

붓꽃 | 배는 잔뜩 부른데 마음이 헛헛한 당신에게 엽서 한 장 띄우고 싶다.

 

 

꽃을 피우려 올라오는 봉오리가
먹물을 함빡 머금은 영락없는 붓이다.
참으로 이쁜 우리 말 꽃이름이다. 붓꽃.
금방 어디에라도 글을 써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붓꽃이다.


옛날 옛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님 그리는 마음 참을 수 없을 때 먹을 갈아
뜨거운 가슴 달래며 연서를 띄워 보냈겠지.
사람을 놓아 마음을 보내 놓고, 그러고는
하염없이 기별오기를 기다렸겠지.


볼펜으로 찍찍 연애편지라고 써서
우체통에 넣어버리던 우리들 세대를
“멋대가리 없는 놈들…” 그러셨겠지.
그래도 그때는 큰 가방 메고 골목길 돌아 올
우체부 아저씨 애타게 기다리며 마음 졸이고
가슴 두근거리던 따뜻한 세월들이었지.
나 대학 다닐 때는 우리집에도 그녀집에도
전화조차 없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시간지켜 만나고 산에 갈 수 있고 그랬었는지
봉화를 올릴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그 통신수단의 메카니즘을 기억할 수 없다.

 

그래도 지금처럼 시간마다 전화질하고
문자질 해대고 쫓기듯 살지는 않았었지.
컴퓨터 이메일이나 핸드폰 문자 나부랭이.
그래서 그녀의 글씨가 얼마나 여리고 예쁜지
얼마나 정성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땅 속을 달리는 초고속 전철에서
문자를 날리면 메아리보다 빠르게 답이 온다.
참으로 숨가쁘게 사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이몽룡이 합격자 발표를 보고 그 자리에서
“장원급제.”라고 성춘향에게 서둘러 문자를
날렸다면 그들의 사랑은 너무 싱거워서
춘향전이라는 소설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비둘기 발목에 편지 달아 보내고 애태우던
그 세상으로 나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중국에서 돌아오는 날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형모에게 점잖게 문자를 보냈다. “귀국.”
단 두 글자에 간단히 답이 왔다. “웰컴 투 코리아.”
“웰컴 투 동막골.” 영화가 한창이던 때였다.
아무튼 그 애비에 그 아들, 우리는 끝내주는 父子之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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