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김승곤의 사진읽기 - 커피 잔에 남은 침전물

#43. 김승곤의 사진읽기 - 커피 잔에 남은 침전물

사진 : Francesca Woodman, Rome, 1977-1978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오늘은 조금 색다른 사진을 감상하시겠습니다. 자신을 모델로 해서 찍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진가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다이언 아버스(Diane Arbus, 1923-1971)와 이 사진의 주인공인 프란체스카 웃드만(Francesca Woodman, 1958-1981)의 작품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여성사진가라는 점 말고도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듯, 혹은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젊은 여성이 차가운 벽에 맨 살의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습니다. 앞쪽으로 예리하게 튀어나온 벽 모서리에 세워진 칼라 한 송이가 지금이라도 앞으로 쓰러질 것 같습니다. 흑백으로 된 정방형의 화면 한쪽 구석에 몸을 웅크린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애처롭고 슬픈 감정이 솟는 것을 느낍니다.

스물세 살의 생일을 앞두고 아파트 창문에서 아래로 몸을 던진 프란체스카 웃드만. 그녀가 오래 동안 실제로 살고 있었던 뉴욕의 낡은 아파트 실내에는 거의 아무런 가구도 장식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곳을 스튜디오로 해서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습니다. 대부분 자신을 피사체로 해서 찍고 있지만, 자화상(셀프 포트레이트)이라기보다는 자신을 모델로 이용해서 찍은 서정시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불가사의한 작품들입니다. 나체로 찍힌 사진이 많지만, 성적인 관심이나 아름다운 여성의 신체를 주제로 한 전통적인 누드사진과는 다릅니다.

사진 속의 그녀는 동화 속의 앨리스의 의상을 입고 있거나, 성숙한 여성의 몸에 하얀 양말, 소녀들이 신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공기의 요정과도 같은 투명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감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녀는 사진에서 낡고 더렵혀진 벽과 마루바닥, 거울이나 유리 같은 날카로운 물질과 부드러운 나신의 대비, 자신의 모습 지우기나 사라지기, 주위 공간에 녹아 들어가기, 어두운 구석에서 떠돌거나 화면 한쪽 귀퉁이로 숨어드는 일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녀는 유서를 남겨놓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지금의 내 삶은 아주 오래된 커피 컵에 남은 침전물과도 같은 거야. 나는 너와의 우정, 그리고 몇 가지 복잡한 일과 아직 때묻지 않은 것들을 남겨둔 채 나는 젊은 나이에 죽고 싶어.”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일까요?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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