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김승곤의 사진읽기 - 짐작이 안 되는 시간들

#42. 김승곤의 사진읽기 - 짐작이 안 되는 시간들

사진 : Harold E.Edgerton, 30 Bullet piercing an apple, 1964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카메라의 셔터 단추에 손가락을 얹고 가능한 한 빠르게 연속해서 셔터를 눌러봅니다. 보통 운동신경을 가진 사람이라면 1초에 다섯 번 정도 셔터를 누를 수 있을 것입니다. 기계는 사람보다 훨씬 빨라서, 셔터를 한 번 누르기만 하면 1초에 100회 정도 연속해서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셔터가 한 번 눌러질 때마다 필름이 따라서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된 최근의 디지털 카메라로는 1초에 무려 20만 컷(프레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발달입니다.

 

MIT의 전자공학 교수였던 에저턴(Harold E. Edgerton, 1903-1990)은 1930년대에 이미 초속 800m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총알이 사과를 꿰뚫고 지나가는 순간을 사진(1964)으로 기록했습니다. 전자 플래시(스트로브) 빛으로 1/100만 초라는 섬광 같은 순간을 얼려놓은 것입니다. 이 총알 사진 말고, 우유 방울이 만들어낸‘밀크 크라운’도 유명하지요. 그는 또 자신이 발명한 카메라로 원자가 폭발하는 순간((Nuclear blast)을 1/100억(10x10-9 초)라는 놀라운 짧은 시간으로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놀라서는 안 됩니다. 1980년대에는 토론토대학의 밀러(R. J. Dwayne Miller) 교수는 레이저 광선으로 알루미늄을 녹일 때 분자 레벨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1/3,000조(300x10-15 초)의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잡았답니다. 그뿐인가요. 3년 전에는 부다페스트대학의 물리학교수인 크라우스(Ferenc Krausz)는 UV파를 이용해서 전자의 움직임을 기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때의 시간은 1/11,000경(110x10-18 초). 거의 짐작이 안 되는 시간 단위입니다.

 

발명 초기의 사진가들은 옆에 잡아둔 고양이의 눈동자가 열리는 크기를 보며 노출시간을 계산했다고 합니다. 최초의 흐릿한 상을 정착시키는데 무려 8시간이 걸렸던 것이 불과 170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있었던 행복한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인류의 미래에 무엇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요?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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