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김승곤의 사진읽기 - 베일에 싸인 사진가의 조금 특별한 사진

#38. 김승곤의 사진읽기 -

베일에 싸인 사진가의 조금 특별한 사진

사진 : E. J. Bellocq, Storyville Portraits, 1912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오늘은 조금 특별한 사진입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는 매춘부를, 그것도 나체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E. J. 베로크(1873-1949)라는 사진가가 죽고 15년이 지난 다음, 그의 책상 서랍에서 나온 100점 가량의 유리 원판에서 프린트된 것으로, 이들 유리원판이 발견되기 전에는 그가 뉴 올리언스의 조선회사에서 배 사진들을 찍었던 직업적인 사진가라는 것 이외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작은 체구에 기형적으로 머리가 크고, 교제성도 융통성도 없었던 베로크는 조금 흥분하면 높은 억양의 목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그런 베로크는 1912년 무렵부터 그곳 스토리빌의 창녀들을 찍었는데, 성적 불능자로 알려진 그가 왜 그런 곳에 가서 그녀들을 찍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 누군가로부터 의뢰를 받았거나 발표하기 위해서 촬영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포트레이트에서는 수치심이나 경계심 같은 것은 추호도 느낄 수 없고, 그 대신 그녀들의 개성이나 감정의 움직임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가 들고 간 배경 천 앞에서 그녀들은 마치 귀부인처럼 정장을 하거나 나체로 소파에 누워 있거나 고양이를 안고 당당하게 포즈를 잡고 있습니다.


뛰어난 포트레이트 사진이란 사진가와 피사체와의 공동제작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로크의 포트레이트 사진에서도 작고 못생긴 용모의 사진가와 사회적 천민인 창녀들 사이에 오간 공통된 감정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베로크의 작품으로 현존하고 있는 것은 이 창녀들을 찍은 사진들뿐입니다. 보시는 사진에서는 원판의 보존상태가 나빠서 유제가 부분적으로 박리되었습니다만, 오히려 그것이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서 그 시대를 살았던 신비한 사진가의 존재를 한층 더 뚜렷하게 떠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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