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김승곤의 사진읽기 - 초록색 눈

#35. 김승곤의 사진읽기 - 초록색 눈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카메라를 응시하는 열 서너 살 소녀의 눈에는 낮 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반항과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보도사진가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가 그녀를 만난 것은 1984년, 파키스탄의 난민 캠프에서였습니다. ‘아프간 소녀’ 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에 실린 이 사진은 전 세계 사람들의 큰 충격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17년 후, 사진 한 장을 들고 그녀를 찾아 나선 맥커리는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가 토라보라 근처의 산기슭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곳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3일, 자동차로 여섯 시간, 좁은 산길을 따라 세 시간을 더 걸어가야 했습니다.


바싹 찌든 중년의 아주머니가 되어 있는 그녀를 만나는 순간, 맥커리는 바로 그 때의 소녀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샤르바트 굴라. 정확한 나이는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 스물여덟 아홉 쯤의 아직 젊은 나이였을 겁니다.눈은 여전히 반짝였지만 피부는 가죽처럼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고난의 세월이 그녀에게서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을 앗아간것이지요.23년 동안의 전쟁과 350만 명에 이르는 피난민. 이 나라의 불행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지도자들은 항상 밝은 미래를 약속 하지만, 그것을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습니다. 침공과 저항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가고 있을 뿐입니다.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산비탈에 옥수수와 밀과 쌀을 심어서 양식을 얻는 그녀는 새벽 동트기 전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물을 길어 밥을 짓고 세 아이들과 천식의 남편을 돌보며 기약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식 날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그녀는 아이들에게만큼은 기술을 배우게 하고 공부를 시키고 싶어 합니다. 열세 살이 되어버린 큰 딸은 늦었지만, 어린 동생들에게는 아직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질 지도 모릅니다. 맥커리와 헤어질 때까지 그녀는 한 차례의 미소도 보여주지 않았답니다. 그가 사진을 보여줄 때까지, 그녀는 자신의 크게 뜬 초록색 눈동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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