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김승곤의 사진읽기 - 한 장의 운명적인 폴라로이드

#30. 김승곤의 사진읽기 - 한 장의 운명적인 폴라로이드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존 레논은 몇 초 만에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요코의 위로 올라가서 마치 어린애가 엄마에게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그녀의 뺨에 부드럽게 키스하고 있습니다. ‘롤링 스톤’지 사진기자였던 애니 레이보비츠는 그들에게 어떤 포즈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찍은 것은 단 한 장의 폴라로이드. 전미국잡지편집자협회로부터 과거 40년 동안 발표된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잡지 표지사진으로 선정된 이 사진은 1980년 12월 8일 오전에 찍혔습니다.


그 몇 시간 후, 레논이 요코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미치광이 팬이었습니다. 주머니에서 꺼낸 그의 리볼버가 불을 뿜었고, 무방비의 레논은 가슴과 어깨 등에 모두 네 발의 총탄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출혈과다로 사망하고 맙니다. 그 며칠 전 레논은 며칠 후에 자신에게 닥칠 불길한 운명을 예언이라도 한 듯 어느 인터뷰에서 대답합니다. “죽는다면 요코보다 먼저 죽고 싶다.” 이 말을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브라질에서 결혼식을 막 끝낸 레논과 요코는 네델란드로 가서 유명한 퍼포먼스 ‘베드 인’을 벌입니다. 하지만 3일 동안 완전한 알몸으로 침대에 드러 누워서 전세계에 반전 메시지를 보내는 이 퍼포먼스는 당시 찬사보다 더 많은 비판을 받았답니다. 그들은 미국에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하려고 시도했으나 입국을 거부당하고 맙니다. 레이보비츠는 그 퍼포먼스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싶었겠지만, 이때 요코는 옷을 벗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애니 레이보비츠는 임신한 데미 무어의 누드를 비롯해서 메릴 스트립, 엘리자베스 여왕, 힐러리 클린턴, 탐 크루즈, 수전 손택, 버락 오바마 등 전 세계의 수많은 저명인들의 초상사진을 찍은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여성사진가 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유명인들을 찍어서 그 덕분에 이름을 얻으려는 사진가들과 달리, 그녀는 시각적인 스캔덜리즘을 전략으로 해서 사회적인 금기에 과감하게 도전한 사진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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