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김승곤의 사진읽기 - 현실을 읽어 내는 눈

#28. 김승곤의 사진읽기 - 현실을 읽어 내는 눈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사진을 하면서 꼭 이름을 기억해두어야 할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바로 스티글릿츠(Alfred Stieglitz, 1864-1946),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사진가입니다. 잘 알려진 작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삼등 선실(The Steerage, 1907)’은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도 독일 유학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회화적인 ‘살롱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진의 현장성과 기록성을 앞세운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이후의 사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건 객담입니다만, 미국의 위대한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가 서른 살이었을 때 22살이나 많은 이혼남 스티글릿츠를 만나 결혼합니다.


이 사진은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그의 첫 번째 부인과 함께 정기여객선을 타고 유럽으로 가던 중, 배가 잠시 항구에 기항했을 때 찍은 것입니다. 데크에서 산책하던 그는 눈 아래 좁다란 나무 통로가 이등 선실과 그 아래에 있는 삼등 선실을 갈라놓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래 쪽 삼등 선실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법 이민자로 꿈의 신대륙에서 추방되거나 유럽에서 온 단기 노동자로 체재기간이 끝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진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번개를 맞은 것처럼 놀란 그는 자신이 머물던 일등 캐빈으로 달려가서 오토 그래플랙스 카메라를 들고 나와 이 장면을 잡게 됩니다. 당시 단 한 장뿐이었던 유리건판에 그렇게 해서 이 기적과도 같은 장면이 담겼습니다.


난간에 걸린 굵은 체인,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마스트, 불안정한 삼각형 화면구도, 실의에 빠진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여행자들의 대비…. 이 모든 것은 각자가 놓인 현실과 그들의 인생에 대한 상징 그 자체입니다. 사회계급과 성의 차별, 평면적인 화면에 기하학적인 형태를 교차시킨 프레이밍과 구도 등은 스냅으로 찍은 이 한 장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현실의 외관을 얼마나 깊이 표현할 수 있는가, 사진가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과 그래픽적인 재능에 의해서 어떻게 예술로 승화될 수 있는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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