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김승곤의 사진읽기 - 달리는 말의 발은..

#29. 김승곤의 사진읽기 - 달리는 말의 발은..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혹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말의 네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는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눈은 그처럼 빠른 움직임 을 포착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몰라도, 달리는 말에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포즈를 취하게 할 수 없지요. 그래서 옛날 화가들은 달리는 말을 그릴 때 네 발이 앞뒤로 뻗친 이상한 모습으로 그렸답니다. 그런 그림은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187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고 명문 스탠포드대학을 설립한 릴랜드 스탠포드는 말이라고 하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었는데, 달리는 말의 네 발이 지면에서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모습인가로 친구 들과 열띤 논쟁을 벌였습니다. 논쟁이 가열되어 결국 25,000불이라는 거금을 걸고 내기를 하기에 이르렀답니다. 스탠포드는 풍경사진가인 머이브리지 (Eadweard J. Muybridge, 1830-1904)에게 2,000불을 주면서 자신의 주장 을 입증해주도록 의뢰했습니다.

 

머이브리지는 1855년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 니다. 1초에 약 17m라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말을 사진으로 고정시키려면 고속 셔터가 필요했지만 당시 감광재로 사용되던 콜로디온 습판은 감도가 낮 아서 맑게 갠 날에도 몇 초라는 느린 속도로밖에는 찍을 수 없었습니다. 머이브리지는 화학과 전기적인 실험을 거듭한 끝에, 의뢰를 받은 지 5년 후인 1877년에 달리는 말의 모습을 연속으로 촬영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말이 달리는 코스에 12대의 카메라를 설치해서 차례로 찍히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때 까지 들어간 경비는 그가 보수로 받은 돈보다 훨씬 많은 5000불이 들었다고 합니다. 참 집념이 강한 사람입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말의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지는 것은 맞지 만, 발이 앞뒤로 뻗치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모아진다는 것이 머리브리지 의 연속사진에 의해서 처음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의 연속사진을 본 에디슨은 큰 영감을 얻게 되었고, 훗날 키네마스코프라고 하는 영사기의 원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이라는 도구가 인간의 시각을 얼마나 넓혀주었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머이브리지이지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험에 한창 몰두하던 1974년, 자신의 아내가 고급 장교인 애인의 아이를 출산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같이 화가 난 그는 아내의 애인을 그만 총으로 쏘아서 그만 살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법정에서는 정당 방위로 인정해서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이 판결 후 머이브리지는 아프리카로 떠났다가 1892년에 자신의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가서 일흔 두 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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