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김승곤의 사진읽기 - 프라하의 봄

#27. 김승곤의 사진읽기 - 프라하의 봄

사진 : 요제프 코우델카, 프라하, 1968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화면 중앙에 뻗친 팔목 시계의 바늘이 정오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풍스런 유럽의 도시에서도 민방위 훈련을 하는 걸까요? 거리가 텅 비어 있네요. 이 사진은 1968년 8월 21일, 요제프 코우델카(Josef Koudelka, 미국식으로는 요셉 쿠델카)라는 당시 30세의 보헤미아 출신의 사진가가 찍은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작품입니다.


‘프라하의 봄’을 기억하시지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지배를 받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기를 말하는데요. 1968년 1월 5일 시작된 ‘프라하의 봄’은 바로 이날 탱크를 앞세운 소련군과 바르샤바 동맹국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면서 7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프라하에서 11년 후인 1979년에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서부터 전두환 소장이 권력을 잡는 6개월간의 짧은 ‘서울의 봄’이라는 것이 있었지요.


코우델카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프라하의 거리를 찍은 필름들을 몰래 숨겨서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이듬해 이 사진이 미국에서 발표되었을 때, 보복이 두려운 그는 본명을 숨긴 채 그냥 ‘P.P.’라는 익명을 썼습니다. ‘Prague Photographer’의 머리글자였지요. 불안한 공기가 떠도는 도시의 거리에 주먹을 쥔 자신의 팔(시계)을 집어넣는 단순한 방법으로 프라하의 정치적 현실과 함께 고독하면서 결연한 인간의 의지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진이 얼마나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매체인지를 이 한 장의 사진이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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