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김서형 - 멀미展
[전시안내] 김서형 - 멀미展
* 장소 : 갤러리 사진적 (서울시 광진구 능동 208-1 / 월,화 휴관)
* 기간 : 2021. 11. 3(수) – 11. 28(일) 오전 11시30분 – 오후 10시
‘수난 고통’ 이거나 혹은 ‘열정’
독일어 Leiden과 Leidenschaft는 한 단어에 서로 다른 뜻이 있다고 했다. gift는 선물이지만 독일어에선 ‘독 poison’이 되듯이.
오래전 라오스를 여행하며 독일인 리베카와 잠시 동행한 적이 있었다. 팍세에서 출발한 슬리핑버스에서 한 침대를 나눠 쓰고 라오스 남부 꽁로 마을까지 흘러들게 된 인연으로 며칠을 함께 지냈다. 우리는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 투어도 같이 나섰다.
꽁로 동굴.
론리플래닛은, 고대 그리스의 수중세계에 필적할 만한 놀라운 존재를 발견하고자 한다면 꽁로 동굴이 그에 해당될지 모른다면서 루앙프라방에 이어 라오스 하이라이트 2위에 랭크시켜 놓고 이 동굴 체험을 스릴 넘치고 소름 끼친다 적고 있었다. 7.5km의 석회암 지하 동굴. 주먹만 한 크기의 거미와 채 헤아리지 못한 박쥐 및 수중 생명체가 서식한다는 그곳에 갔다.
두 명의 뱃사공이 이끄는 나룻배는 동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마음의 준비나 각오의 여지도 두지 않고 무심하고 재빠르게 어둠 속을 향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일체의 빛. 싸구려 랜턴에서 나오는 낮은 조도의 답답한 인공광이 우리가 가진 다였다.
우리는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날개 달린 구두(나룻배)를 신고 스스로를 사라져 보이게 만드는 모자(헤드 랜턴)까지 쓴 채, 죽은 자를 지하세계로 인도한다는 헤르메스에 이끌려가듯 암중으로 암중으로 도강했다.
얼마나 갔을까. 프랑스 팀이 디자인한 조명등이 한두 군데의 석회암 종유석을 그럴싸하게 비추어 포장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 동굴의 검은 뱃속을 속 시원히 밝혀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진실을 감추는 빛 ‘illumination’. 실은 우리를 아무것도 모르게 만드는 위험한 빛일지도 몰랐다. 보이지 않는 강물, 철썩이는 물 소리, 꽤 가쁘게 흘러가는 배의 속도. 다행히 무언가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무사히 이곳을 지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그 분주한 증명들은 말하자면,
누구나 한번은 죽음을 거치지만 생의 소란과 속도에 애써 진실을 묻고, 쥐여지지 않은 채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삶의 매 순간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있으면서도 마치 ‘영원’을 간직하며 살 것처럼 구는 우리의 생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죽음을 대면한다면 이렇게 어둠 속을 파고들고 주도하며 끌어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둠과 물과 몰입하기 좋은 적절한 시간, 그렇게 왕복 두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나 따위가 아무리 불길한 상상을 해도 세상은 그대로이고 심지어 끄떡없다는 것을 단번에 보여주는 저편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을 확인하는 것. 그리하여 주어진 생을 다시 안심하며 받아들이는 것. 지금 생각해보니 동굴 투어의 미덕은 그것이었다.
수심이 얕아 배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해야 하는 구간이 몇 군데 있었다. 입구에 거의 다다를 때 쯤, 불온한 몽상이 끝나감에 대한 안도였을까. 저 멀리서 들어오는 화려한 빛을 보며 호기롭게 걷다가 강바닥 석회암 돌무지에 그만 발이 삐끗했다. 깊은 물 속에서 누군가가 내 발목을 끌어당기는 듯한 짧고 깊은 낙하.
돌무더기 위로 간신히 몸을 건져 올리고 무사히 투어를 마쳤지만, 디딜 바닥을 느끼지 못한 채 순식간에 허리까지 빠지고야 말았던 그 까마득하고도 휘청했던 순간이란.
뭍으로 돌아와 내 정강이를 보니 웃음이 났다. 상처 난 곳을 물로 씻어 내리며 난 리베카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날 좀 봐. 이래서 Leidenschaft(열정)는 Leiden(고통)이 필요하다니까”
갤러리사진적 11월 전시는 김서형 작가의 사진전 <멀미>입니다.
상승과 추락, 광휘와 곤궁, 단절과 비약, 부재와 관계, 불멸과 유한... 이 모두가 실은 하나이듯. 떠나보낸 이를 향한 ‘애도’ 역시 계속되는 ‘사랑’임을 마주해보면 좋겠습니다.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학과 사진전공 석사학위청구전
<김서형 사진전 ‘멀미’>
◎ 전시기간: 2021. 11. 3(수) – 11. 28(일) 오전11시30분-오후10시
◎ 전시장소: 갤러리 사진적 (서울시 광진구 능동 208-1 / 월,화 휴관)
◎ 전시문의: 010-8753-8955
작가노트
<멀미> - 김서형
삶의 고통은 면역력이 강하다. 그러나 경험치가 무의미해지는 아픔이 있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필연적인 죽음이기에 맘의 준비를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항상 동반한다. 누구의 죽음도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에, 항상 첫 죽음의 경험이기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간이 약이다’라며 떠난 이들을 보내 주고, 현실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한다. 며칠간의 애도를 마치고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 속도에 멀미를 느꼈다. 또한 다들 제자리로 돌아간 듯한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나의 삶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죽은 이들과 현실 속에서 공존하는 듯한 나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우울증 환자로 보이고 나의 삶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빈자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이미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이다.
이별에 있어서 만병통치약으로 보이는 ‘시간’ 은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슬픔은 어느 날 느닷없이 튀어나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의 공존과 연속된 삶을 그리워하는 갈망이 커졌다. 데리다는 우리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 때, 그에 대한 애도도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에 끝이 없어야 함도 당연한 것이다. 애도는 완성해야 하는 작업이 아니라, 잃어버린 그들을 끝없이 찾아 나서는 길인 것이다.
세계가 몸이 지각하는 데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지각의 장을 확장함으로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편협함을 깨부수고, 전 우주적으로 확장된 세계를 통해 언젠가는 찾을 그들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진에 의해 드러나는 이미지는 나의 눈길에 앞서 존재하는 지각의 대상이 있음을 드러내 주는 듯하다. 바닷가는 과거의 흔적과 시간이 축적된 장소이자, 상상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눈물을 흘릴 수도 없고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엄마를 만나 대신 울고, 우리 놀이터였던 바다에서 동생을 만나 아빠의 품에 안긴다. 무엇보다 앞으로 그들과 같이 공존하는 삶을 살기 위한 내 맘의 비밀 장소인 것이다.
그 바닷가에서 세월의 켜 속에 담긴 수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현재의 나를 이어 미래를 여는 통로를 만들기 위한 과정들을 수행적으로 행한다. 사진의 병치를 통해 새로운 시공간에서 유발되는 감각을 예민하게 들여다 본다. 그러는 중에 생각지 못한 부분들과 마주하게 된다. 감춰진 이야기를 추적하는 것이다. 죽음은 거부할 수 없지만 관계는 거부할 수 있다.
나의 작업은 완성될 수 없다. 다만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을 시각언어로 표현하므로, 무질서의 의식에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 있게 잘 슬퍼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남겨진 나를 유난히 걱정했을 그들을 향한 행동과 의지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떠난 그들과 그들의 부재 속에 살아가는 나를 위한 끝이 없는 애도를 하는 것이다. 즉, 계속되는 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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