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강남역902 사진전 AFTER 현대예술로서의 사진展
[전시안내] 강남역902 사진전 AFTER 현대예술로서의 사진展
* 장소 : 류가헌
* 기간 : 2020.11.03 - 15
* 오프닝 : 2020.11.03 화요일 5시
* 전시작가 : 변경랑, 전용혜, 한기애, 한상재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을 읽고 난 후에
여기, 한 권의 책이 있다. 샬럿 코튼이 지은 <현대예술로서의 사진>. 21세기 지배적인 예술 형태로서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한 이상적인 지침서라고 일컬어지는 책이다.
그리고 여기, 그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지침 삼아 사진 작업을 한 네 명의 사진가가 있다. 변경랑, 전용혜, 한기애, 한상재. 개념미술의 평범하고 기교 없는 스냅사진부터 정교하게 구성된 타블로 사진까지, 오늘날 예술가들이 사진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거의 전 영역이 담긴 책의 내용 안에서 저마다 자신에게 맞거나 마음이 끌리는 작업 방식을 선택해 각자의 사진작업으로 구현해 낸 것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이다.
책 136p에 실린 나이젤 샤프란(Nigel Shafran)의 작품 <(플라스틱 테이블 위의) 반짇고리 알마 플레이스>에서, 작은 탁자 위에 놓인 특이한 반짇고리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마치 집안의 토템처럼 조각적인 형태로도 보인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의도적으로 장면을 구성하기보다 일상생활에서 발견되는 행위에 주목하는 나이젤 샤프란의 이 같은 작업 방식은 변경랑의 마음을 끌었다. 그녀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일상을 지내는 동안, 날마다 카메라를 들고 한강 주변을 걸었다. 지나가는 자전거와 마스크를 쓴 산책객, 강가에 쪼그리고 앉은 소년과 공원의 조형물 등 공간에 스며있는 인물과 사물의 정체를 관찰하고는, 주변광이나 장노출 기법을 이용해 평범한 장면에 시적인 리듬을 부여한 나이젤 샤프란의 방식으로 포착했다. 실제로는 침수돼 진흙을 뒤집어쓴 조형물일 뿐인데도, 곧 강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할 것처럼 먼 곳을 응시하는 분홍펭귄들. 제목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닌’ 사물이자 풍경이지만 기이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변경랑의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미지를 차용하고 재구성해서 새로운 개념의 시각예술로 바꾸는 작업에 천착해온 사진가 전용혜는 책 215p부터 시작되는 ‘부활과 재생’ 섹션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른 이미지나 기호에 의해 결정되는 이미지의 의미에 대한 고찰로 시작한 그녀의 작업은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과 이어지며 <패스티시Pastiche>로 귀결되었다.
작업노트 말미에 ‘사진 작가 윌리 도허티, 사이먼 노포크, 디누리의 작품을 흠모하며’라고 밝힌 한기애는 위험표시 테이프가 둘러쳐진 놀이터와 공원의 벤치, 운동기구 등을 통해 코로나19 팬더믹 시대의 사회적 초상을 <코로나19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담았다.
129p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에 실린 샬럿 코튼의 이론에 주목한 한상재는 음식재료의 하나에 불과한 ’하찮은‘ 토마토라는 대상을 중앙에 놓여 조명을 받는 ’중요한‘ 존재로의 변환을 시도했다. 지난 전시 <석작>에서 보여 준 것과 같은 정갈하고 회화적인 정물사진 <토마토>가 그 결과다.
네 명의 사진가는 함께 사진을 공부하는 <강남역 902>의 동인들이다. 공부하고 탐색하고 현실에서 구현해가는 네 사진가의 놀라운 열정은 11월 3일부터 갤러리 류가헌 전시2관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 02-720-2010
작업노트
변경랑 _ 아무것도 아닌 시간, @한강 다이어리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시작되었다. 난생처음 겪는 재난 앞에서 너도나도 한없이 사소해진 오늘을 감당해야 했다. 날마다 한강을 걸었다. 붕붕거리며 지나가는 자전거와 마스크 산책객, 무위를 낚는 어부들, 강가에 쪼그리고 앉은 소년을 보았다. 해 저물 무렵, 느린 셔터 스피드로 시간을 멈추고, 포착된 공간에 스민 정체를 관찰했다.
‘사진으로 찍지 않거나 찍을 수 없는 주제 같은 것은 없다. 사진 속 주제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현대예술로서의 사진』, 샬럿 코튼
이번 전시는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강남역 902’ 사진 동인과 함께 읽었던 샬럿 코튼의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이다. 이 결과물은 현대 예술 사진의 범주 중 하나인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과 ‘내밀한 삶’의 개념과 연관된다. 특히 두 영국 작가의 다큐멘터리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서 발견되는 행위를 절제된 양식으로 다룬 나이젤 샤프란(Nigel Shafran)과 사진과 문자를 결합해 관계의 서사를 표현한 애나 폭스(Anna Fox)이다. 나이젤 샤프란은 주변광, 장노출 기법을 이용해 평범한 장면에 시적인 리듬을 부여한다. 특히 그는 무의식적인 사물의 나열을 통해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무엇보다 의도된 연출을 배제한 그의 사진에서 인식을 지배하는 일상의 모습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편 애나 폭스의 작품은 강화된 텍스트로 이미지 너머에 존재할 무수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두 작가는 내게 사진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언급이자 예술임을 보여주었다.
눈앞을 스치는 것들에 시선을 맞추고, 그 안에서 현재를 의미 짓는 신호를 탐색했다. 연작 ‘아무것도 아닌 시간 #05’는 한강에서 발견한 견딤의 시간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이어 붙인 작업이다. 각 장면 사이 공백은 지금 여기, 건너기 힘든 일상의 ‘틈’을 뜻한다. 곧 일련의 조각 풍경은 흰 여백에 차오를 무엇에 대한 기다림이다.
전용혜 _ Pastiche, 혼성곡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서 이미지의 의미는 다른 이미지나 기호들을 참조하여 상대적으로 결정될 뿐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 이미지에서 의미의 요체는 하나의 특별한 이미지로서 뿐만 아니라 유형적인 이미지들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인 지식에서 비롯된다. 우리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식하게 만드는 사진, 우리가 어떻게 보는지, 이미지들이 어떻게 우리의 정서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유발하고 형성하는지 스스로 의식하게 만드는 사진들이다.”(현대예술로서의 사진, 샬럿 코튼. 7.부활과 재생 P216)
나의 ‘Pastiche’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이다.
상상과 실재가 중복되고 사라진 양식들로부터 승계된 상징이 존재한다.
수수께끼 같은 내러티브narrative가 있다.
디지털 사진을 배우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기계의 변환을 주도하며 쓰인 이야기는 뭘까 궁금해서 ‘사진의 역사/ A NeW HISTORY OF PHOTOGRAPHY, MICHEL FRIZOT’ 책을 산 것이다. 책장을 넘기며 본 이미지의 변화는 많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언어였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서일까? 또 보고 싶을까? 사진의 역사는 보여주기 위한 여정을 계속하지만 나의 ‘Pastiche’는 오히려 보여주지 않으려는 변조alteration를 통해 물리적 형태를 재현한다. 다양한 언어놀이와 필요 부분만을 취하려는 삶의 패턴은 디지털 조각 같은 구름 위 세상에서 나는 굳이 왜.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은 사진가에게 알리바이가 되고 사유 된 삶의 신화myth가 가능하다. 강렬한 기원의 감동이 섞이고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나의 ‘Pastiche’가 세계의 작품을 여행하는 까닭이다. 숭배되지 않는 기호화된 물건과 변조된 기억은 reset해가며 날개 달고.
‘훌륭한 예술가가 빌리지만 위대한 예술가가 훔친다good artists borrow, great artists steal.’는 피카소의 말처럼 새로운 메세징을 창조하는 ‘세계, 모두가 나의 스튜디오’이다.
한기애 _ 코로나19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현대예술 사진작가는 대개 반反르포르타주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즉 천천히 사진을 찍고 행위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이 지난 뒤에 현장에 도착한다. … 사진작가들은 비극 뒤에 남겨진 것들을 재현하고자 한다. (「현대예술로서의 사진」 6. 역사의 순간들 187:8~187:19 중에서)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매번 그 시간들이 역사적 순간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2020년 지금도 우리는 코로나19 팬더믹이라는 역사에 기록될 순간들을 목격하고 있다. 세계를 휩쓴 코로나19의 위협과 공포 속에서 서울 시민들이 즐겨 찾는 올림픽 공원도 예전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위험 표시 테이프를 두른 금지 구역이 곳곳에 생겨났다. 놀이터와 농구대, 배드민턴장, 운동기구와 벤치 등이 한순간에 위험한 곳이 되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비가시적인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곳곳에 이런 가시적인 형상을 만들었다.
무더운 여름밤에 공원에서 발견한 이 을씨년스런 풍경들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강력한 전염병에 당황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느껴져 한편으로 가슴 아프다. 사진가의 본분으로 이 장면들이 2020년 코로나19 팬더믹 시대의 슬픈 사회적 초상으로 여겨져서 카메라에 담는다.
다만 사람들이 금지테이프를 배드민턴의 네트로 이용하며 코로나19 상황을 이겨보려는 웃픈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결국은 코로나19를 극복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 사진 작가 윌리 도허티, 사이먼 노포크, 디누리의 작품을 흠모하며
한상재 _ 토마토-다양성을 버리고 무엇을?
“표면적으로 사진의 아주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바로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것들이다. 우리는 보통 이런 것들을 그냥 시선의 주변부로 내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물건들이 예술적 어휘 내에서 신뢰할 만한 시각적인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진들은 대상의 물성을 담고 있지만, 사진으로 재현되는 방식으로 인해 주제가 개념적으로 변모한다. 사진을 통해, 평범한 것은 일상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의미와 상상의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 ” 현대예술로서의 사진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 중에서- 샬럿 코튼
음식재료의 하나에 불과한 토마토라는 대상을 하나의 정물사진으로 인식하려면 어느 정도의 추상화는 필요했다. 오롯이 중앙에 놓여져 조명을 받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작업을 통해서 토마토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고 싶었다.
지난여름 우연히 다품종 토마토사진을 접하고는 처음 보는 신기하고 아름다운 토마토에 사로잡혔다. 생산량이 많지 않고 여러 일들이 겹쳐서 어렵게 한 박스를 구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컬러, 문양이 아름다운 토마토는 맛도 제각각이었고 시각적으로도 즐거움을 주었다. 잘랐을 때는 품종별 특성이 도드라졌다. 여백이 있는 꽃문양부터 알알이 속이 들어찬 것까지 겉모습과는 다른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빨강, 노랑, 보라, 주황, 초록, 수박처럼 줄무늬에 구불구불한 모양까지, 18종의 토마토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세계 각 지역의 토종 씨앗을 찾아서 우리 식탁을 풍요롭게 하려는 농장주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몬세라토, 인디고 로즈, 시칠리안 토게타, 그린 지브라, 로마, 골든넛 등등...
전세계 25,000여종의 토마토중에서 오롯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이 몇 개나 될까?
세계화는 우리의 식탁마저 지배한지 오래되었다. 상품으로 판매되기 위한 토마토는 생산량이 많아야 하고, 보존성이 뛰어나야 하며, 맛과 향이 도드라지지 않고 병충해에 강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 맞지 않는 토마토들은 일반적인 상업 시스템 밖에 존재한다. 유기농으로 재배해서 맛과 향을 고급화해야 하는 특수 토마토들은 일반 토마토에 비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종의 다양성문제나 환경, 건강문제 등을 생각한다면 그리 큰 부담도 아니다. 소비에 대한 약간의 생각 전환만 이루어진다면 각각의 종이 지닌 맛과 향, 아름다운 가치를 보존하고 누릴 수가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다양성을 잃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작가소개
<강남역 902> 소개
강남역 902는 2018년 3월에 만들어진 사진 독서그룹이다. 이들은 매주 월요일 강남역에 있는 한 공간인 902호에 모여 사진에 관해 공부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창작의 씨앗을 키운다.
변경랑
2015년부터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키워드를 주제로 ‘서울’을 찍고 있다. 콜드&핫 플레이스, 언더그라운드, 골목, 재개발, 공원을 작업했다. 앞으로는 거대도시가 지켜온 것과 새로 등장한 것들이 어떻게 융합하는가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전용혜
시각적 이미지를 차용하고 재구성하여 개념을 재정의하는 발견된 사물의 비선형적 시간을 탐구하고 있다.
한기애
사회현상과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진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해방촌, 미세먼지에 관한 작업을 해왔다.
한상재
여성의 시각으로 소소하지만 놓치기 쉬운 것들을 탐구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남편과 어머니의 물건에 대한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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