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제이안 - CITY SPECTRUM展

[전시안내] 제이안 - CITY SPECTRUM展 

* 장소 : 화순군립 천불천탑사진문화관(061-379-5893)

* 기간 : 2020-08-18 ~ 2020-12-31

 

 

 

 

‘도시문화’의 스펙트럼으로 보는 ‘색’의 미학
김화자(성균관대 하이브리드미래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초빙교수)

 

작가 제이안은 도시 사진을 ‘색’으로 촬영해 왔다. 서울과 뉴욕에서의 삶은 그녀의 시각과 작업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내재화 되어 이질적인 동서양의 문화는 작가의 작업에서 충돌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작품들마다 독특하고 뛰어난 ‘색’ 감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제이안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색’을 중심으로 세 시기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들 속 ‘색’은 바로 그녀가 직접 거주하거나 방문하면서 경험했던 각 도시마다 고유한 문화를 상징하는 사회적이면서도 그 구성원 각자의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하는 공감각적 시선을 드러낸다.

독일의 현상학적 여성철학자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존재란 노동, 작업(일), 행위의 양상들로 조건 지어진다고 진단한다. 단순히 생필품으로 환원될 수 없는 작품을 만드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작업이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자신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세계를 건립하는 활동이다. 다시 말해 소비존재를 넘어서는 ‘제작행위’는 인간이 생물학적 질서를 벗어나 ‘세계-내-존재’로서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며 주어진 자연환경을 변화시키면서 공동생활을 할 수 있는 생활양식과 상징체계, 즉 ‘사유구조’의 표현으로서 문화를 형성한다. 거주민의 의식과 몸에 사회적 취향으로 체화된 규범은 공동체 생활에 필수적인 상징적 체계로서 문화적 취향을 드러낸다. 그런데 언어와 달리 누구나 직관적이고 정서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색은 이런 상징형식의 대표적인 표현수단이다. 서울, 뉴욕, 파리, 쿠바의 고유하고 독특한 도시문화를 때론 직관적으로 때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매혹적인 색의 이야기로 포착해낸 제이안의 색에 귀 기울여보자.

라틴어 `cultura`에서 파생된 `culture`를 번역한 문화는 본래 `경작(耕作)`의 의미였지만 후에 교양, 예술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교양과 예술이 집중적으로 표현된 곳은 도시다. 고대 도시는 자연과 타 공동체의 물리적인 위협과 침입으로부터 자신의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해 형성되었다. 반면 근대 도시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기능적 공간으로 개발된 마천루들이 빼곡히 들어선 회색도시가 되었다.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시간들은 수직과 수평 공간에 구속되었지만 현대에 이르러 규격화된 회색 숲에서 벗어난 건축물들은 춤을 추듯 유연한 곡선을 지니고, 건물의 외피는 저마다의 얼굴처럼 개성 있게 화장을 하고 있다. 작가 제이안이 주목한 도시는 회색빛의 우울한 풍경이 아니다. 형형색색의 광고와 이미지로 치장하고 미혹하는 빌딩 숲에서 각자의 삶으로 분주하게 이동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동작, 욕망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다채롭게 채색된 도시의 일상과 그런 일상이 정치적 또는 경제적 논리를 간직한 채 아스라한 추억만 남기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장소들이다. 《CITY COLORS》, 《COLOR&CUBA》, 《청계천-기억될 시간》에 등장하는 뉴욕, 파리, 서울, 쿠바, 그리고 청계천의 ‘일상’은 정념적인 프레임을 통해 제이안만의 균형 잡힌 ‘색’ 감각을 구현하고 있다.

인류문화사를 통해 색은 뉴턴(Isaac Newton)의 스펙트럼(spectrum)을 통해 ‘빛깔의 띠’라는 색의 물리광학적 비밀이 밝혀진 이후 지성, 질서를 대변하는 ‘선’에 비해 감성, 혼돈을 상징해 왔다. 그러나 색 덕분에 예술은 현실의 모사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 ‘시적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 결과 ‘스펙트럼’은 ‘다양하게 나뉠 수 있지만 고유한 범위’라는 추상적 의미도 획득한다. 다시 말해 색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색 전문가로 알려진 프랑스의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는 색에 대한 역사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색이란 단지 광화학적인 현상도, 생리심리적 현상(괴테)도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서 ‘사회색 지표indicateur sociochromatique)’임을 밝혀주었다. 이를테면 색은 물리적이거나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사유의 진화를 알려주는 풍부한 역사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색은 각 사회마다 고유한 취향을 특정한 색지표로 드러내는데 도시는 그런 사회적인 색지표를 가장 집약적으로 가시화시킨 장소다.

명료한 선이 인간의 풍요로운 정서를 가두었던 것에 반해 색은 지성으로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퐁티(Mauricr Merleau-Ponty)는 순수한 색이란 존재하지 않고 정열적인 빨간 장미의 빨강, 낭만적인 붉은 노을의 빨강처럼 색은 주체의 감성으로만 촉지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흑백사진에서 생생한 세계가 무채색의 질서로 규정된다면, 제이안의 색들은 흑백논리로 환원시킬 수 없는 자연의 풍요로운 색조, 인공적이지만 원색 또는 파스텔 톤의 환상적인 색의 대비와 조화가 만들어낸 도시문화의 상징들을 보는 즉시 감정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사진 속 광고이미지의 극단적인 색들은 다양한 대중매체의 발달과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색이 가장 강력한 시각언어이자 욕망의 언어로서 정보보다 시각적 즐거움과 함께 상호작용적 기호로도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하게 해준다.

평상시 그녀의 패션 스타일이 증명하듯 작가 제이안은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다. 그녀가 촬영한 도시연작 전체를 관통하는 색들은 ‘이미지와 문장의 조화’를 보여준다. 작가의 직관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성으로 정지시킨 도시의 공간들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영화처럼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완벽한 미장센(mise en scène)을 이루고 있다. 《CITY COLORS》에서 세계의 경제 및 예술과 패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도시 뉴욕을 가득 채운 상품 광고와 공연 포스터의 색채들은 직설적이고 자극적이지만 세련된 대비를 이루면서 끊임없이 소비욕망을 자극하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사회색을 그대로 드러낸다. 즉 금덩이처럼 번쩍거리는 조각상과 붉은 조명의 속옷 매장에서 물신적이면서도 열정적인 구매욕망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반면 무심한 채 분주하게 이동하는 시민들의 배경이 되어 건물 전면을 뒤덮은 압도적 크기의 ‘자라’의 흑백과 ‘루이비통’의 튀지 않는 옥외광고들에서 내면화된 뉴요커의 은밀한 욕망의 코드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뮤지컬, 보드카, 한국 관광 등을 광고하는 사진 속 이질적인 색들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울려 살며 만들어가고 있는 뉴욕이란 도시문화의 역동성을 목격하게 해준다. 이에 반해 오래된 도시의 역사만큼 퇴색한 듯한 파리의 회색 톤에서도 작가의 사진 속 파리지앵들의 사랑, 낭만, 위트, 자유가 넘실대며 만들어 낸 색과 형태의 결정적 순간에 미소 짓게 된다. 특히 걸어오는 여인이 에펠탑을 모자처럼 쓴 버스 광고의 모델과 중첩되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은 그야말로 배경, 맥락과의 절묘한 조화 없이는 결코 좋은 형태와 의미를 만들지 못하는 게슈탈트(gestalt)의 완벽한 효과를 창출한다. 나아가 한국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서울 삼청동의 초록 빛 은행나무와 멋진 구도를 이룬 하얀 서구식 레스토랑의 나무 벽화와 붉은 차양들에서 점점 서구문화에 익숙해져 가는 동시대 문화적 취향을 볼 수 있다. 또한 새 페인트로 건물 전체를 칠하는 착시효과를 주는 대우빌딩의 거대한 가림 막의 무지개 빛깔의 붓 자국들은 근대화의 역사를 지우며 부단히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도시, 서울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쿠바》 연작은 카리브해안의 찬란한 빛들의 향연이 고스란히 아바나(Habana)의 일상을 시와 음악으로 만들어 버린 쿠바의 사랑스런 색채들에서 혁명의 소용돌이를 통과한 역사만큼 가슴시린 정서와 이를 기꺼이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정열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작가가 아바나와 트리니다드에서 걸으면서 포착한 일상들은 순박한 자연의 색조와 강렬한 페인트의 색, 보이지 않는 체제의 차가운 규율과 삶의 뜨거운 열정, 궁핍한 경제와 정서의 풍요가 오묘하게 혼합되어 조화를 이룬 쿠바의 도시문화를 체험하게 해준다. 강렬한 색면회화 같은 벽면을 배경으로 촬영된 시민들의 다양한 몸짓과 표정들, 먼지하나 없는 정오의 빛 아래 폐허가 된 건물 외벽에 칠해진 색과 자유분방한 낙서화, 그리고 노을 빛 아래 멈춰선 장면들은 그 자체가 영화의 한 컷 같은 삶의 완벽한 순간들이다. 덕지덕지 겹쳐 바른 페인트가 떨어져 나간 벽면들조차 궁핍한 삶보다 멋진 데콜라주 작품들처럼 보인다. 아바나의 역사가 평범한 일상이 된 긴 회랑의 파스텔 톤 파사드를 배경으로 말과 함께 알록달록한 원색의 올드 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리는 그곳을 걷는 시민들이 금방이라도 춤추며 노래할 것 같은 뮤지컬의 무대처럼 우리의 시선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카스트로(Fidel Castro)와 체 게바라(Ché Guevara)의 공산주의 혁명으로 굴곡진 시련과 빈곤의 그늘에도 아바나의 맑고 투명한 환상적인 색들은 블루스의 애잔하지만 정열적인 리듬처럼 슬픔을 사랑과 자유의 열정으로 승화시킨 매혹적인 도시 아바나의 문화에 다가가게 한다.

《청계천》 연작에서 작가는 서울 한 가운데 오랜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청계천 공구상가 골목을 도시재생이라는 명분아래 그 흔적마저 지워버리려는 개발사업 이전에 기록한 역사의 현장들을 목도하게 해준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촘촘히 붙어 있는 영세한 금속가공 공장과 상가에 무심히 걸린 간판들, 녹슨 함석판과 군데군데 갈라지거나 떨어진 시멘트벽에 아무렇게나 뿌려진 원색의 스프레이 자국과 낙서들, 여기저기 나뒹구는 공구들, 벽을 따라 뒤엉켜 있는 전선들과 멈춰선 시계들은 대도시 속 청계천의 위상을 드러낸다. 바람에 뒤엉키고 찢겨진 채 처마에 매달려 있는 붉은 천막, 지나간 시간만큼 누렇게 바랜 광고지를 사이에 두고 벽에 걸린 땀으로 바랜 주인 잃은 작업복들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찢겨진 전단지와 버려진 선반, 금소파편들로 혼돈스런 폐허의 색은 미로를 누비며 채집해온 작가의 프레임을 통해 철을 절단하고 돌리는 장인의 작업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다시 생동한다. 청계천의 시간을 더 이상 ‘잃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사진 속 청계천 골목은 여기저기에 유기된 기계들의 붉은 녹, 굳게 닫힌 셔터문의 노랑, 파랑의 얼룩들, 광고판의 검은 글씨에 혼돈스럽게 웅성거리며 존재한다. 스마트도시의 일환으로 낡은 장소를 재생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따라 청계천과 을지로 일부가 이미 주상복합 건물로 리모델링 된 지금 작가의 청계천 연작은 진정한 새로움이란 문화적 아카이브가 보존될 때에만 그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요컨대 제이안의 사진들 속 세계 주요 도시의 장면들은 시간이 멈춰선 결정적 순간을 넘어 각 도시의 고유한 역사와 시민들의 일상을 다채로운 색의 조화와 대비로 간직한 ‘도시문화’의 독특한 생명력을 그녀의 정념적인 색 감각으로 포착해 낸 무언의 ‘색’의 미학을 보여준다.

 

 

 

CITY COLORS.2007.Rockerfella Center.New York City_100x150c.Pigment Print

 

 

 

CITY COLORS.2009.Paris##05_100x150cm.Pigment Print

 

 

 

COLOR&CUBA.2010.Havana#10_142x213cm.Pigment Print

 

 

 

COLOR&CUBA.2010.Havana#16_142x213cm.Pigment Print

 

 

 

COLOR&CUBA.2010.Trinidad#14_80x120cm.Pigment Print

 

 

 

청계천#02_2011_120x180cm.Pigment Print

 

 

 

청계천#05_2011_142x213cm.Pigment Pr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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