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윤승준 - 코드 블루 Code Blue展
[전시안내] 윤승준 - 코드 블루 Code Blue展
* 장소 : 더레퍼런스(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24길 44)
* 기간 : 2019.05.29 - 06.22
* 오프닝 : 2019.05.29(수) 17:00
개요 |Preface
더레퍼런스는 2019년 5월 29일부터 6월 22일까지 윤승준 개인전 《코드 블루 Code Blu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국내의 중단된 공사로 방치된 건물을 추적한 <코드 블루 Code Blue>(2017-2019) 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코드 블루는 사전상에 ‘의료코드의 한 종류로, 심장마비가 온 환자가 발생 시 사용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심장마비’라는 단어가 주는 급박감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의사들만의 심정지 사인인 ‘암호’를 말한다. 중단된 건축을 바라보는 ‘건축가’로서의 시선이 담긴 <코드 블루 Code Blue>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작업이다. 서울과 속초, 부산, 제주, 철원, 고성, 홍천, 남양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건축이 중단된 건물’들을 촬영했다. <코드 블루 Code Blue>에 담긴 피사체들은 대부분 짧으면 10여년 길면 25년 이상 방치된 건물들로 ‘유령건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공주택에서부터 리조트, 일반 상업건물 등 다양한 기능의 이 건물들은 파사드를 통해 본래 용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 곁에 있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한 ‘코드 블루’ 상태인 건물을 통해 우리 사회에 놓인 정치, 경제, 사회적 문맥을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할 것을 권유한다.
윤승준 |Yoon Seung-jun
현재 SPACE22 관장이며 '시가건축'의 대표로써 다수의 건축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1956년 서울 출생으로 한양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였고 한경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과에서 사진을 전공하였다. 8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공부를 시작하여 다수의 그룹전시에 참여하였으며, 개인전으로 2014년에 <자동기술>, 2017년 를 가졌다. 사회 공익적 사회집단 <꿈꽃팩토리>일원으로 현대사회의 공간과 환경, 변모하는 땅의 풍경에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인 작업을 모색하고 있다.
단 체 전
2019 《그림자 놀이》, 토템 폴 포토 갤러리, 도쿄, 일본
2017 《제10회 전국국제사진제 컬렉션》, 사진공간 눈, 전주, 한국
2017 《Reappearing Memories》, ArtHelix Gallery, 뉴욕, 미국
2015 《못살, 몸살, 몽상》, 매향리 반환미군 부대 내, 화성, 한국
2015 《장면의 탄생》, 갤러리 룩스, 서울, 한국
2014 《유리도시 프로젝트 》, 갤러리93-1, 수원, 한국
2013 《국제골목 컨퍼런스》, 서울역사 박물관, 서울, 한국
2013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보다》, 서울메트로 미술관 1관, 서울, 한국
2013 《천개의 마을 천개의 기억》,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학 력
1979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2018 한경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과 사진전공
작가노트 : 코드 블루 Code Blue
룩소르, 테베(Thebe)라 불리는 이 도시에는 태양신 라와 결합한 우주 창조의 신으로 여겨진 아문(Amun)신을 위해 지은 ‘카르나크 신전Karnak Temples’이 있다. 이집트의 테베는 우리에게 아문신의 도시라기보다는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왕이 다스리던 도시로 더 깊이 새겨져 있다. 오이디푸스왕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태어난 테베의 왕’이다. 파라오가 기원전 1990년부터 대를 이으며 2000년 동안 이어온 카르나크 건축의 역사는 고작 백년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을 거부한 증거처럼 남아 있다.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탑문과 거상, 신전, 성소와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어서, 오히려 신전을 걷다보면 앞으로 지어야 할 건축물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밤이 되면 빛의 쇼가 펼쳐지는데, 이런 상상은 오히려 밤에 더 증폭된다. 마치 아문신의 운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짓다가 중단된 건축물과 재난, 시간의 흐름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죽음을 향해 무너져 가는 건물은 어떻게 다를까? 굳이 경계를 짓자면 ‘물리적 시간’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중단된 건축물은 언젠가는 소생할 가능성이 있는 불확실한 ‘미래의 시간’을 담보하는 반면 폐허를 향해 가는 시간은 과거의 시간을 껴안고 역시 ‘미래의 시간’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시공간 안에서 이론을 만들어 온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존재하는 시공간을 구조물로 보고 있다. 지금처럼 우리가 나누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단위는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할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그렇게 자세히 설명을 해도 우리는 ‘현재의 시간’ 안에서 의미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우주宇宙’라는 한자는 집우, 집주를 써서 세계, 만물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 자연, 질서 등의 개념을 담고 있다. 건축은 다른 어떤 대상보다도 이 세계와 시간을 이해하는 시각적 구조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카르나크 신전에 빛을 비추면 ‘한 순간’,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되살아난 듯 보인다.
국내의 중단된 공사로 방치된 건물을 추적한 <코드 블루 Code Blue>(2017-2019) 연작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든 죽음의 운명을 거슬러 소생하길 바라는 ‘건축가로서의 직업적 시선’이 담겨 있다. 코드 블루는 사전 상에는 ‘의료코드의 한 종류로, 심장마비가 온 환자가 발생시 사용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심장마비’라는 단어가 주는 급박감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의사들만의 심정지 사인인 ‘암호’다.
<코드 블루 Code Blue>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서울과 속초, 부산, 제주, 철원, 고성, 홍천, 남양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건축이 중단된 건물’들을 찍었다. 대부분 짧으면 10여년 길면 25년 이상 방치된 건물들이다. 죽어가는 건물이라 해서 ‘유령건물’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공사를 재기할 수도 있으니 죽었다는 표현은 하지 않으려 한다. 피사체들의 사연은 제 각각이다. 부도가 났거나, 투자유치 문제, 소송, 인수, 사업성 등 사회학적 환경에 놓인 건물은 제 각각 운명을 지니고 있다. 사유재산이라 법적 제재도 쉽지 않지만, 각 지자체 별로 ‘공공기능’으로 재생시키는 사업도 진행 중이다. 공공주택에서 리조트, 일반 상업건물 등 다양한 기능의 이 건물들은 파사드를 통해 본래 용도를 짐작케 할 뿐이다.
건물 공간의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파사드’를 찍음으로써 건물이 놓여진 ‘공간’을 극대화했다. 다소 차갑고 무표정해 보이다가 밤이 되어 빛을 비추면 마치 연극 무대의 주인공처럼 주위의 사물들은 모두 물러서고, 파사드 자체의 존재감이 극대화되곤 했다. 낮엔 아무 말 없이 독백을 하다가 비로소 목소리를 내어 누군가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어둡고 적막한 침묵은 저만치 물러선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모뉴멘타2010>전이 열린 파리 그랑팔레에 <페르손personnes>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누군가가 입었던 무려 50톤에 달하는 셔츠와 원피스, 스웨터 등의 옷들을 가득 채워놓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페르손’이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의 것,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코드 블루 Code Blue>도 중단됨으로써 용도 폐기된 상태의 기표다. ‘코드 블루’라는 응급 사인을 보내는 이상, 우리는 그 앞에 설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것이었지만, 이젠 우리 모두의 현실이 된 건축이라는 생명체로서 다가온 그들을.
평론 : 미완성된 풍경 / 지도에 없는 장소 - 스가누마 히로시, 큐레이터
‘윤승준은 건축가였다.’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는 건축가(였던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시선으로 파악한 건축물 사진을 여태껏 본 적이 없다. 윤승준만이 지닐 수 있는 시선이다. 이 연작은 완성된 건축물을 찍은 건축사진과도 다르고 폐허를 찍은 이미지와도 다르다.
그가 선택한 피사체는 건축이 중단된 건물들이다. 기초 공사 단계에서 멈춘 건물부터 공사 도중에 멈춰 버린 것, 거의 완성에 가까운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일본에서도 버블 경제가 붕괴된 이후인 90년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때마다 보기 싫은 풍광을 억지로 봐야했던 경험과, 씁쓸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윤승준의 시선은 왜 그곳으로 향해 있는 것일까?
그의 사진에는 분노나 슬픔, 동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미지에서는 분명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작자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사진이다.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속 보게 만들어 버린다. ‘이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도록 이끈다. 그는 가능한 그런 감정이 들어가지 않도록 뉴트럴 하게 찍으려고 하고 있다. 건축물은 똑바로 서 있고 수평 수직은 정확하게 맞는다. 이런 사진을 보면 독일의 사진작가 베른트&힐라베허 부부가 떠오르지만 그들의 표현과도 다르다.
에는 도시 오피스 빌딩부터 아파트, 주택 예정지의 일부분과 지방의 리조트까지 다양하다. 날씨나 빛도 일정한 조건 아래 촬영한 것 같지도 않다. 이른바 타이폴로지로서 건축물의 특징이나 상태로 분류하고 그것을 고찰하려고 하는 태도도 없다. 그리고 한때 일본에서도 붐이 일어 한 장르를 확립한 폐허사진과도 다르다. 그가 폐허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제목으로도 알 수 있다. 는 최근 일본에서도 방영된 의료 드라마 제목으로도 사용됐다. ‘Code Blue’는 의료현장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곳에서 가까운 장소에 있는 의사들을 소집하기 위해 사용하는 은어이다. 하지만 윤승준은 이런 건축물들을 이미 죽음이 확정된 상태로는 보지 않았다. 다시 살아나길, 바라니 이런 제목을 썼을 것이다. ‘Code Blue’라는 사인이 나오면 담당 의사나 진료 과목에 상관없이 그 장소에 있는 의사 전원이 모여야 한다고 한다. 어떤 상태인지 여러 관점에서 진료와 조치를 하고 환자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이 제목에는 마치 이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모두 모이라고 하는 윤승준의 생각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정도의 콘크리트 덩어리를 보게 되면 하타케야마 나오야(畠山 直哉)의 『라임 웍스』('96년/시너지 기하학)가 머리를 스친다. 적어도 이 건축물 덩어리만큼의 석회석을 캐내기 위해 산이 잘려나간 셈이다. 몇 억 년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 산이 사라졌다. 그 산이 헛되이 사라지니 건축가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리고 자연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느 사진을 보아도 건축물 옆에는 자연과 초목이 등장한다. 마치 잘려 나가버린 산을 되찾을 듯이 점차 콘크리트 덩어리는 초목으로 덮여 폐허로 변해 자연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런 죽음에 이르기 전에 윤승준은 이들 건축물을 재생하기 위해 ‘Code Blue’를 발령했다.
건물을 하나 짓는데 얼마나 많은 인력과 많은 시간이 쌓여, 여기에 이르렀는지 그 스스로 건축가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미완성 건축물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이 완성되기까지는 클라이언트의 희망 사항을 듣고 구조를 생각하면서 건물의 구상을 도면에 만들고 많은 공사 관계자와의 의견 교환을 거쳐 힘들게 착공에 이른다. 그렇게 진행되어 온 것이 도중에 멈추었다. 자금 운용의 실패 혹은 경제적인 문제, 법률적인 문제 등의 여러 이유로 공사 진행이 멈춘 사태가 건축 관계자들에게는 어떤 마음이 들게 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아는 시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이 일시 정지된 건축물들의 풍경은 종류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풍경 사진으로서도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 - 인간으로 인해 바뀐 풍경 사진"('75년) 이후, 여러 곳에서 풍경을 찍어 왔지만, 그런 사진과 비교해봐도 이질적인 풍경이다. 시간이 일시 정지된 인위적인 풍경이다. 원래는 완공 되었어야 마땅했지만, 현재는 어중간한 상태이고, 당초에는 지금과 다른 풍경이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이도 저도 아닌 미완의 풍경이 되었다. 건축가의 일은 어떤 의미나 풍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이 건축물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완성된 건축물은 지도에 반영되겠지만 이들은 아직 거기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고 지도에도 없는 장소의 사진이다. 건축가의 일은 지도를 만드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기서 건축가와 사진가의 관계가 보인다. 상류에 서서 풍경과 그 지도를 만드는 건축가와 그것을 받아들여 기록해 비평하는 하류의 사진가의 구도가 보인다. 이 는 하류에서 물의 흐름을 되돌리는 윤승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사진가 윤승준의 선언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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