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김승곤의 사진읽기 - 성난 불독, 처칠

#24. 김승곤의 사진읽기 - 성난 불독, 처칠

사진 : 유섭 카쉬, 윈스턴 처칠, 1941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

 

 

 

 

입을 꾹 다물고 화난 얼굴로 카메라를 노려보는 이 사진, 어디선가 한번쯤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또 한 사람의 초상사진가 유섭카슈 (Yousuf Karsh,1908-2002)가 찍은 처칠의 초상사진입니다. 라이프지의 표지를 장식해서 카슈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이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긴박한 분위기와 영국 수상의 결연한 태도를 상징하는 걸작 중의 걸작입니다.

 

처칠의 유머와 위트 감각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이트 하우스에서 체재하는 동안 샤워를 하고 있을 때, 트루먼 대통령의 비서관이 욕실 문을 두드리면서 긴급한 사정을 알려왔습니다. 수건도 두르지 않은 알몸으로 튀어나온 처칠을 보고 놀라는 비서관에게 처칠이 말했습니다. “영국수상은 미국 대통령에게 무엇 하나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또 있지요. 한 번은 영국의회에서 한 여성의원이 “내가 당신의 처였다면 당신이 마시는 홍차에 독을 넣었을 겁니다.” 처칠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지요. “네, 만일 내가 당신 남편이었다면 기꺼이 그 홍차를 마실 것입니다.”

 

이 사진은 처칠이 카나다 의회에서 예의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한 성공적인 연설을 마치고 난 직후에 찍혔는데, 불독 같은 처칠도 이때는 자신의 뛰어난 유머감각에 만족하고 있었지요.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써야 할 만큼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때여서 카슈에게 주어진 촬영시간은 2분, 단 한 장의 사진만을 찍도록 허락 받았다고 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요?

 

비결은 간단합니다. 엄격하고 호전적인 표정을 잡고 싶었던 카슈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처칠에게 다가갔습니다. “각하,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미처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처칠의 손에서 낚아채듯 시가를 뺏었습니다. 카슈는 회상했습니다. “내가 카메라 쪽으로 가서 처칠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는 잡아먹을 듯 분노에 찬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슈가 셔터를 눌렀습니다. 실은 이때 두 장을 찍었습니다. 첫 번째 컷은 온화한 미소를 띤 ‘프레스 용’ 표정, 전혀 처칠 답지 않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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