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윤길중 - 오브제, 소멸과 재생展
[전시안내] 윤길중 - 오브제, 소멸과 재생展
* 장소 : 류가헌 (02-720-2010)
* 기간 : 2019년 8월 6(화) ~ 18(일)
* 오프닝 : 8월 6일 (화) 오후 6시
여기, 불에 탄 사물의 사진이 있다. 사과, 구두, 옥수수, 호두, 시계...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불 태워진 사물이다.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사물들의 남은 색마저 지운 후 두 장씩 인화해서, 한 장은 수직으로 한 장은 수평으로 잘랐다. 고유의 색을 잃어버린 대상의 형체까지 해체한 것이다. 그런 다음, 마치 바구니를 짜듯이 한 줄은 씨줄 한 줄은 날줄 삼아 두 개의 사진을 다시 이었다. 그러자 2차원의 평면이던 사물이 3차원의 입체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사과, 구두, 옥수수이던 것이 이전과는 다른 사과, 구두, 옥수수가 된 것이다. 형상과 색으로 쉽게 판단되어지던 사물들이 색을 잃고 형태가 바뀜으로써 오히려 눈길을 끌고 의미를 드러내며 그 존재를 환기시킨다. 사진가 윤길중이 2017년에 작업한 다.
불에 탐으로써 그 본디의 색과 형상을 잃고 다른 형색으로 재창조되었던 속 사물들의 인상이, 2019년에 그를 화마가 지나가고 난 장소 앞으로 이끌었다. 대형화재가 일어났던 현장 ‘고성’으로 홀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이유다. 그곳에는 숟가락과 주전자, 밥이 가득 담긴 채 그대로 불타버린 밥그릇이 있었다. 받침과 바퀴는 사라지고 틀만 남은 의자와 자전거, 창이 있던 자리에 구멍이 뚫린 벽이 있었다. 형태와 기능이 사라지고 파편으로 남겨진 불 탄 사물들은 알아챌 만큼 익숙하면서 동시에 낯설었다. 두 대척점 사이에서, 불행한 오브제들에 대한 가냘픈 연민이 일었다. 작가는 아무도 눈여김 하지 않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다. 현실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그 가차 없는 ‘소멸’을, 사진만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윤길중 사진전 <오브제, 소멸과 재생>은 이 두 개의 사진 작업을 하나로 잇댄 전시다.
문예비평가 유헌식은 작가론에서 ‘윤길중의 눈에 들어온 대상은 하나 같이 보잘 것 없이 미미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 안에는 관통하는 하나의 작가의식이 숨어 있다. 되살리기(renaissance)의 의식(儀式)이다. 죽은 것 혹은 죽어가는 것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 생명의 의식이다. 그는 죽어 있는 것을 다시 살리는 재생(再生)을 지향한다.’ 고 말한 바 있다. 섬에 쓰러진 나무들을 대상화한 첫 전시 부터, 장애가 있는 신체를 찍은 , 철거를 앞둔 집들과 버려진 집기들을 기록한 <기억흔적>,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무덤 앞 석상들을 찍은 <석인의 초상>, 사찰의 풍경에서 대웅전만을 분리해낸 <큰법당>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지속해 온 작업들은 이러한 작가론을 예증한다.
사진가 윤길중이 이번에는 불 탄 사물들에 어떻게 다시 ‘르네상스(renaissance)’를 불러왔는지, 오는 8월 6일부터 2주간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작업노트 >
1.
시소(see saw)
우리는 우리 기억 속에 저장된 이미지로 사물을 판단하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사물에 변형을 줌으로써 조금은 낯설게 하고자 했다. 일반적으로 형상과 색으로 사물을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나는 사물을 불에 태워 색을 지운 후 사진을 찍었다. 형상만으로 사물을 인지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물을 볼 때 기억된 이미지로 판단을 하지만, 색을 지워버린 사물은 기억된 이미지와 다르기 때문에 판단을 하는데 멈칫거릴 것이다.
나는 사물을 불에 태워 색을 지우고 찍은 사진들을 프린트한 후 이미지 해체를 시도했다. 똑같은 사진을 두 장 프린트해서 한 장은 수직으로 자르고 한 장은 수평으로 잘랐다. 그러자 사진 속 사물들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파편으로 나뉘어졌다. 이렇게 잘게 잘린 두 장의 사진을 씨줄과 날줄을 직조하듯 엮어 자르기 전의 이미지로 재조합 했다. 사실은 같은 이미지이나 다른 이미지로 재생성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상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 안에 내재된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고 싶어서다. 이미지의 조각들을 퍼즐놀이 하듯 하나하나 맞춰 나가면서 사진에 박제된 피사체를 전에 없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완성된 사진은 0.5cm 픽셀의 조합으로 구성된 셈이다. 색을 지워버려 그냥 인지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미지를 잘게 잘라버렸으니 바라보는데 더욱 방해가 될 것이라는 걸 나도 안다.
우리가 사물을 특히 사진 속 사물을 보고(see) 보았다(saw)는 것은 무엇을 인지했다는 것인가! 우리 기억 속에 고정된 이미지의 사물을 보면 호기심이 작동하지 않는다. 사물이 놓인 배경과 구도와 프레임에 잠시 눈길을 주기는 하겠지만 그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물에 대해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사물에 변형을 줘 사진을 찍고, 관람자의 시선을 조금 더 붙잡아두기 위해 프린트된 이미지를 해체해 재조합 해 본 것이다.
2.
2019년 4월에 발생한 고성, 속초 산불 피해지역을 일주일이 지난 후 찾아갔다. 피해의 심각함을 보여주고자 함은 물론 아니고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은 장면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사진가의 본능이 발동한 거다. 화마가 휩쓸고 간 가옥들에 숨어들어가 불 탄 오브제들을 기록한 거 또한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게 내가 끌려 들어간 것이다.
나는 시화호 근처 형도라는 섬에 쓰러진 채 살아가는 나무들의 삶을 기록한 를 ‘갤러리 나우’ (2014)에서 전시했고, 2012년부터 5년간 장애인들의 삶을 기록한 을 ‘혜화역전시관’(2013), ‘서울시청’(2015), 시드니 ‘Head On Photo Festival’(2019)에서 시리즈별로 발표했다. 북아현동 재개발지역의 철거를 앞둔 집들과 그곳에 버려진 낡은 집기들을 기록한 <기억흔적> 은 ‘류가헌’(2015)에서 전시를 했고,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무덤 700여 곳에서 촬영한 석상들을 <석인의 초상> 이란 타이틀로‘갤러리 사이’(2016)에서 발표했다. 전국의 사찰을 찾아다니며 건축미가 뛰어난 법당들을 촬영한 <큰법당>을 ‘류가헌’(2018)에서 전시를 한 바 있다.
문예비평가 유헌식 교수(단국대 철학과)는 나를 평한 작가론에서 ‘윤길중의 눈에 들어온 대상은 하나 같이 보잘 것 없이 미미한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 안에는 관통하는 하나의 작가의식이 숨어 있다. 되살리기(renaissance)의 의식(儀式)이다. 죽은 것 혹은 죽어가는 것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 생명의 의식이다. 그는 죽어 있는 것을 다시 살리는 재생(再生)을 지향한다.’ 고 나의 작업에 대한 맥락을 짚었다.
중심에서 밀려나 방치되어 있는 것들에 나도 모르게 관심을 가져온 것은 나의 직업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나는 1994년부터 사용되고 난 후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생하여 새로운 원료로 만들어내는 일을 해오고 있다. 용도를 다한 플라스틱을 재생하여 다른 제품으로 살아가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사물이나 생물에게는 주어진 자연수명이 있다. 갑작스런 재해로 수명을 다한 집기들에게 사진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을 수는 없는 일이디. 불에 탄 채 어두운 곳에 방치되어 있는 파편들에게서 문화적 숨결을 읽어내기도 쉽지 않다. 나는 단지 파편들에게 눈길을 사로잡혔고, 억울함을 토로하는 듯 하는 그들의 표상을 3일 동안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불행한 오브제들에게서 삶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하면 과장된 표현이란 걸 안다. - 윤길중
윤길중
개인전
2019 <오브제, 소멸과 재생>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대구
2018 <큰법당> (류가헌) 서울
2017 <천인상> (갤러리 인덱스) 서울
2017 <석인> (서학동사진관) 전주
2016 <석인의 초상> (갤러리 사이) 서울
2015 <기억흔적> (류가헌 1, 2관) 서울
2015 <아름답지 않다, 아름답다> (서울시청) 서울
2014 詩畵> (갤러리 나우) 서울
2013 <노란들판의 꿈> (혜화역전시관, 이음책방, 동숭동헌책방) 서울
그룹전
2019 <INTERSECT>휴스턴, 미국 (2019.9.5~11.9)
2019 HEAD ON Photo Festival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2017 KIAF art Seoul 2017 (코엑스)
2017 전주국제사진제<초월의 숨결> (전주향교)
2017 싱가포르
2016 (GeleriaSaro Leon) 스페인
2015 5인전<기억된 풍경> (공간291)
2014 동강국제사진제 Growing Up (영월문화예술회관)
출판 2019 (AKAAKA)
2018 <큰법당> (류가헌)
2016 <석인> (이안북스)
2015 <기억흔적> (이안북스)
'전시 안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시안내] 어윈 올라프 - PALM SPRINGS展 (0) | 2019.08.16 |
---|---|
[전시안내] 사진가 임안나 - 아를국제사진축제 <오픈소스> 안나의 아를 Anna's Arless展 (0) | 2019.07.23 |
[전시안내] 양승우 - 기억하기 위해, 모두 언젠가는 사라진다展 (0) | 2019.07.16 |
[전시안내] 이희자 - My angel Africa展 (0) | 2019.07.16 |
[전시안내] 김정환 초대전 - 신과의 만남 (0) | 2019.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