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를 애도하며

프랭크를 애도하며

20세기 사진사의 거인 - 로버트 프랭크 영원히 잠들다

글 : 김승곤 (사진평론가, 국립 순천대학교 前 석좌교수)

 

 

그림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사람도 피카소 이름 정도는 안다. 사진 분야에서도 상식으로서 기억해두어야 할 이름이 몇 있다. 지난 20세기에 꼭 알아야 할 사진가 다섯 명을 들라면, 그 중 한사람이 바로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그리고 1958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 「The Americans」다. 전후 미국인의 삶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담은 스냅사진으로 사진사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로버트 프랭크가 지난 9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그는 승전 분위기와 ‘미국몽’의 분위기에 도취되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미국사회의 그늘진 뒤안길의 빈곤과 인종차별, 소외라는 문제를 이방인의 렌즈를 통해서 차고 날카롭게 고발했다. 뉴 올리언즈의 버스 내부 승객에서부터 자동차 공장노동자와 뉴욕에서 길을 잃은 카우보이를 찍은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의 흔들리고 거친 입자의 충격적인 사진들은 휴머니즘과 모더니즘이 지배적이던 1960년대, 미국이라고 하는 국가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트 제너레이션에게 커다란 반향과 절대적인 호응을 일으켰다.

 

1924년, 스위스인 어머니와 독일계 유태인을 아버지로 취리히에서 태어난 프랭크는 1940년대 중반부터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1947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로 패션잡지 ‘하퍼스 바자’를 거쳐 포토저널리스트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영국과 웨일즈, 파리 등지에서 취재한 사진으로 1955년 구겐하임 기금을 받은 그는 2년 가까이 아내와 두 아이를 낡은 승용차에 태우고 16,000km의 “The Americans”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다. 싸구려 호텔에 머물며 10센트 샵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촬영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아칸소에서는 스위스식의 특이한 억양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의심받아 감옥에 갇히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미국 전역에서 촬영한 약 30,000컷에 이르는 방대한 스냅사진 가운데에서 골라낸 83컷으로 ‘미국인’을 편집했으나,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 보여주는 그의 사진을 받아주는 출판사는 미국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기념비적인 사진집의 초판이 발행된 것은 1958년, 미국이 아닌 프랑스의 출판사였다. 이 사진집은 1960년대 들어 비트 제너레이션의 중심에 서있던 소설가 조 케루악과 시인 앨런 긴즈버그, 그리고 미국 사회의 모순에 직면한 미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의 사진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근대사진이 현대로 전환되는 기점을 이 사진집의 출현으로 보고 있다.

 

과테말라에서 딸을 비행기사고로 잃고, 아들은 정신병으로 고통 받다가 사망했다. 고난 속에서 초기의 사진작업을 도와준 첫 아내와 이혼한 후, 조각가인 두 번째 아내와 결혼했다. 사진가로서 사진의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20세기의 위대한 사진가 로버트 프랭크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미국인’ 가운데 몇 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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