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63

천지 야영 | 나는 명당 자리에만 천막집을 짓는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간다고
온 세상이 들썩거렸다. 예수 탄생 2000년.
예수쟁이도 아닌 사람들도 덩달이처럼
밀레니엄 어쩌구 하면서 시끌벅적 요란했다.
나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산에 올라
천지 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새해를 맞았다.
그해는 소한 추위가 유난히 매서워서
영하 오십 도를 재는 온도계도 죽어 버렸다.
한낮에도 얼어터질까 겁나서 사진기를
못 꺼내고 주춤거렸다.


그래도 눈벽돌로 담을 두른 천지 한가운데
우리 천막집은 펄렁거리지 않고 아늑했다.
천지벌판의 그 유명한 돌개바람이
밤낮을 안가리고 미친듯 몰려들어와도
우리집은 날려보내지 못한다. 꿈쩍도 않는다.


현재 천지 얼음두께가 5m쯤 된다고, 천막집에
마실 온 조선 천지연구소 연구원 동무가
꼬량주 한 잔 하고 얼큰해져서
국가기밀인 양 나에게 슬쩍 일러준다.


천지 얼음벌판을 한 자쯤 파면 맑은 물이 고인다.
그 신비를 아는 사람,
그 물 먹어본 사람, 흔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이 천지 얼음벌판 위에는
정확이 국경선을 찾을 수가 없다.
천지의 55%가 조선땅이고 나는 한민족이니까
GPS 없이 어림잡아 천지 한가운데라고 생각하고
천막집을 지은 여기는 분명 조선의 영토일 것이다.


조선과 중국은 서로 친한 우호국이니까
우리의 휴전선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천지 물 위에, 얼음 위에까지 국경선을 그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선에 천막집을 짓고
살아볼 수 있다는 게 묘한 마음의 설레임.


조선천지연구소 연구원 동무는
우리집에 가끔씩 마실 와서 술 한 잔 하고 가는데
철조망도 감시자도 없는데 나는 왜, 어째서
그들 연구소에 가서 밥 한 끼 먹고 올 수 없나.
이 가슴 속에 무언가 쉽게 말로 할 수 없는
응어리가 있는듯 하다. 무얼까? 이 답답한 마음은.


중국인들은 천지를 자기네 꺼라 생각하고
우리도 천지를 우리 꺼라고 생각한다.
양쪽 다 천지에 국경선이 있다고는 생각 못 한다.
그렇다 여기는 그냥 천지 한복판이고
우리 모두 곰할머니의 자손일 뿐이다.
나는 그냥 곰할머니 아들인 단군할아버지의 후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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