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안내] 문선희 - 묻다展

[사진전] 문선희 - 묻다展

* 장소 : 류가헌(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113-3(자하문로 106))

* 기간 : 2017.11.21 - 12.03

 

 

■ 어떤 ‘매몰’에 대한 아름답고 섬뜩한 질문
- 문선희 사진전 <묻다> 11월 21일부터 류가헌에서

 

시각적 명확성이 늘 인지적 명확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 문선희의 사진 <묻다>가 그렇다. <묻다>의 사진들은 모든 요소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형태와 질감, 색깔까지 모두 선명하다. 그러나 사진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흙이나 풀, 뼈 정도는 식별할 수 있지만 여전히 모호하다. 299, 11800, 84879. 사진 옆에는 숫자들이 쓰여 있다. 명확한 수량이지만, 무엇을 뜻하는 지는 역시 알 수 없다. 이와 같은 시각적 명확성과 인지적 명확성 사이의 괴리는, 어떤 섬뜩을 예감케 한다.

 

 “이 사진들은 구제역·조류인플루엔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제목으로 쓰인 숫자들은 그 땅에 묻힌 동물들의 수이다.”


사진의 대상을 알고 나면 다시 사진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비닐 속에 은폐된 동물 사체들의 피와 식물의 잔해, 노랗고 끈적이는 액체를 토해내는 풀과 하얀 곰팡이로 뒤덮여버린 땅. 기괴하게 변해버린 자연물은 또 다시 섬뜩함을 일으킨다. 아마 그 감정은 작가가 2014년 처음 매몰지에 발을 딛었을 때와 같을 것이다.

 

문선희는 ‘살처분’이라는 용어가 감염동물과 접촉한 동물, 동일축사의 동물 등을 죽여서 처분하는 것임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산되던 해에 알게 되었다. 430만 마리의 돼지, 소, 염소, 사슴과 64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혔다. 살처분 된 동물의 매몰지는 3년 간 발굴이 제한되며 이후 다시 사용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그는 발굴 금지 기간이 지난 후의 매몰지가 궁금해 집 근처 매몰지를 찾았다. 멀쩡해 보이는 땅에 갑자기 발이 푹 빠졌다. 발이 닿는 곳 모두가 물컹했다. 그 곳은 통째로 썩고 있었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명이 살 수 없는 땅들을 작가는 100곳 넘게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했다. 카메라의 기계적 특성을 이용해 더 자세히 확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정부가 분명한 규칙을 만듦으로써 모호한 땅이 생겨났듯이, 문선희는 분명한 사진을 찍음으로써 모호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렇게 쉽게 읽히지 않는 사진들로 카메라는 채워졌다.

 

질문과 매몰을 동시에 의미하는 제목 <묻다>처럼 전시장의 사진들은 관람객들에게 묻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동물들을 땅에 묻는다. 문선희는 스스로에게도 책임을 물어 동물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매몰지의 현실을 알린다. 가장 좋은 재료와 방식으로 프린트와 액자를 제작하는 것은 장례식이나마 성대하게 치러주려는 마음에서다.

 

이번 전시는 ‘서학동사진관’과의 교류전으로, 전주 서학동사진관에서 열었던 전시를 서울 류가헌으로 옮아 와 서울의 관람객들에게도 선보이는 것이다. 그동안 조용히 회자되던 <묻다> 작업과 젊은 사진가 ‘문선희’ 그리고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서 화면으로만 만났던 이미지들을 전시작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는 11월 21일부터 갤러리 류가헌에서 2주간 열린다.

 

 

 

■ 작가노트

묻다 - 문선희

 

 2011년,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정부는 단 한 마리만 의심스러워도 해당 농장은 물론, 반경 3km이내의 모든 농장의 동물들까지 살처분 하라는 지엄한 명을 내렸다. 그로인해 전국에 있는 430만 마리의 돼지‧소‧염소‧사슴과, 64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속절없이 파묻혔다.

 

 매몰은 급박하게 전개되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안락사 대신 생매장 되었고, 매몰지는 부적절한 위치에 조성되었으며, 기본 시설조차 갖추지 못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4,800여 곳의 매몰지에서 피로 물든 지하수가 논과 하천으로 흘러나왔고, 썩지 못한 사체들이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2014년, 법정 발굴 금지 기간이 해제되었다. 3년 전, 천만 이상의 생명을 삼킨 4800여 곳의 불온한 땅은 고스란히 사용가능한 땅이 되었다.
 
 대개의 매몰지는 비닐로 은폐된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사체 썩는 악취가 피어올랐다. 대지의 기척도 예사롭지 않았다. 불길이 닿은 적 없는 땅에서 풀들은 까맣게 타 죽었다. 어떤 풀들은 새하얀 액체를 토하며 기이하게 죽어갔다. 그나마 풀조차 자라지 못한 곳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매몰지에서는 작물 재배가 시작되었다. 콩은 자라지 못했고 부추는 생육이 더뎠다. 논에는 날벌레가 자욱하게 끼었고, 옥수수와 깨는 짓무르고 쓰러졌다.

 

 정부는 규칙을 만들었고, 그 규칙에 따라 예외 없이 파묻었다. 그곳에 죽음은 없었다. 다만 상품들이 폐기되고 있을 뿐이었다. 판단은 거세되고 효율만이 작동하는 동안 동물들은 면역력을 놓쳤고, 대지는 자정능력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했다.

 

이 작업은 합리성과 경제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우리 사회 시스템에 의해 산 채로 매장된 동물들과 함께 우리들의 인간성마저 묻혀버린 땅에 대한 기록이다.

 

 

 

■ 프로필

문선희

2001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 개인전
2017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공간291, 서울묻다, 서학동사진관, 전주
2016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은암미술관, 광주
2015 묻다, 도립옥과미술관, 전남 묻다, 금호갤러리, 광주
2010 우리동네, 자미갤러리, 광주
2009 우리동네, 모리스갤러리, 대전

 

· 단체전
2017 지리산 국제환경예술제 자연의 소리, 지리산 하동 일원, 하동 청년의 書, 광주시립사진전시관, 광주
2016 CONTEMPORARY ART IN DAMBIT, 담빛예술창고, 담양 젊은 사진가 보고전, 갤러리생각상자, 광주
2015 자연과 인간, 인간과 자연, 무등현대미술관, 광주 접변, 한평갤러리, 광주
2014 신진청년작가지원전, D 갤러리, 광주
2011 작은 것이 아름답다, 모리스갤러리, 대전
2010 Life & Survival Images, 금호갤러리, 광주
 
· 출판
2016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난다
2013 「눈물이 마려워」, 북노마드
2008 「One fine day in Praha」, 넥서스

 

· 작품소장 
광주시립미술관

 

 

#1 문선희. 1765. 90*90cm. c-print. 2015.

 

 

 

 

 

#2 문선희. 299. 50*50cm. c-print. 2015.

 

 

 

 

 

#3 문선희. 2312-01. 100*100cm. c-print. 2014.

 

 

 

 

 

#4 문선희. 11800-03. 50*50cm. c-print. 2015.

 

 

 

 

 

#5 문선희. 84879-03. 90*90cm. c-print. 2015.

 

 

 

 


[사진전] 문선희 - 묻다展

* 장소 : 류가헌(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113-3(자하문로 106))

* 기간 : 2017.11.21 - 12.03

* 문의 : 02-720-2010 / ryugah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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