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김승곤의 사진읽기 - 자연과의 조화와 일체감
사진 : 강호문
지금은 콘크리트와 철근, 유리 같은 재질을 사용한 건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의 소재로 지어진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물은 참으로 뛰어난 아름다움과 함께 우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흙과 나무를 사용한 건축물에서는 억지로 틀에 맞춰서 만들어낸 듯한 인공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과의 조화와 일체감이 있지요. 그 형태 속에는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고유한 정서와 미적인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에서 찍은 이 한 장의 사진만 보아도 왜 이곳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청마루가 끝나는 곳에 연못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어수문과 주합루의 처마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햇빛이 드리운 나무 바닥과 그늘에 묻힌 무거운 천정을 두 개의 굵은 기둥이 중앙에서 화면을 안정감 있게 받쳐주고 있습니다. 안과 밖을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주는 흰색 들창들의 뻗혀 나간 방향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부용정 건너편의 사정기 비각과 붉은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의 정원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여유와 짜임새, 자연과의 조화, 안쪽과 바깥의 이어짐, 비움과 채움의 균형 잡힌 공간, 절제와 해방, 단아함과 장엄함, 신성함과 유현한 시간성…, 한국의 건축이 가진 이런 특징들이 잘 표현된 훌륭한 사진입니다.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성능과 융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초광각 렌즈처럼 넓은 범위를 볼 수 있고, 밝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곳까지 명암차가 큰 장면에도 대응할 수 있지요. 그 뿐인가요. 상의 일그러짐이나 문제점을 자동적으로 수정해서 파악합니다. 그래서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과 눈으로 보는 장면과는 상당한 갭이 생깁니다. 같은 건물을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과 가까이에서 광각렌즈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서 프로포션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내와 외부 공간이 이어진 이 사진의 경우, 수평과 수직이 단정하게 서 있는 것도 좋았고, 명암비가 적은 구름 낀 오후의 광선도 재질 감이나 정일한 고궁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300여 년 전에 부용정을 지은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본다면 자신들의 생각이 잘 살려졌다고 만족해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건축사진가들은 머리 속으로 설계자의 의도를 이미지로 그려 가면서 사진을 찍는답니다.
글 : 김승곤(사진평론가, SPC사진클럽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