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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29. 11:00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55

앵초 | 돌 틈에서 꽃은 참 이쁘게도 피워냈다. 백두산에서 만난 어떤 사진작가 선생. 지가 백두산 몇번씩이나 왔다고 자랑이다. 두견호텔에 삼박사일 묵고 좀이 쑤셔 이제는 더 찍을 게 없다고 돌아가던 그를 나는 안다. 여권의 도장 숫자나 세고 있는 한심한 분들아. 여러 번 다녀가는 게 자랑이 아니다. 나는 산 아랫동네에 집 사놓고 살아버린다. 나는 산에 들어가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산에 살아버린다. 산이 좋다. 산에 사는 게 좋다. 세상에 나가면 사는 방법도 서툴다. 몸도 마음도 산에 길들여져 산이 편하다. 열몇 번을 왔대거나 몇 년을 살았대거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자랑이 아니다.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말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좋은 사진을 내놓는 것도 자랑이다. 그런데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을 수 ..

2019. 1. 21. 20:08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54

분홍할미꽃 | 허리도 굽었지만 열매에 달린 털이 백발이다. 중국명 백두옹. 백두산 원경사진 한번 찍겠다고 송강하에서 만장 가는 길녘 금강촌. 蘇玉和네 집에 방을 얻어 살았다. 소 동무는 소학교 동창인 색시하고 열아홉 살 먹은 아들 하나 두고 날마다 허허 웃으며 재미나게 산다. 남편은 색시를 위해 날마다 숯을 굽고 색시는 남편을 위해 날마다 뜨개질을 한다. 저녁이면 동네사람 두셋씩 마실 온다. 외국사람 처음 본다고 구경하러 온다. 모여 와서는 이래 저래 나를 웃긴다. 나도 서툰 중국말로 그들을 웃겨준다. 손님 대접한다고 커피 내놓으면 중약같다고 깜짝 놀라 손을 휘휘 젓는다. 집주인 소 동무네 세 식구와 송강하 가서 맛있는 거도 먹고 함께 목욕도 하러 간다. 어떤 때는 사진 하는 일보다 순박한 그들과 어울리..

2019. 1. 14. 19:55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53

바위솔 | 솔방을을 닮아서 바위솔. 바위 틈에 살아서 바위솔. 나는 돌밭이나 바위 틈에 뿌리를 박고 강인하게 피어나는 꽃들을 만나면 무조건 좋아한다. 무조건 존경한다. 지독한 태양열에 달궈진 암벽의 복사열과 계속되는 가뭄의 극단적인 갈증을 참고 모질게 불어대는 미친바람도 견디고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극한 상황을 극복해내는 그 여린듯 강한 생명들. 그들에게 우리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자. 그들의 삶을 한번쯤 생각해보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바위 틈의 악조건에서 열심히 물과 양분을 만들어 보내는 뿌리들, 숨은 일꾼들. 우리 사는 세상에도 그런 이들은 있다. 자기를 내세우려 하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어려운 일을 해내는 아름다운 사람들. 진정으로 기립박수를 받아야 할 그들이다. 누가 꽃이 되..

2019. 1. 8. 13:27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52

패모 | 그 스튜디오도 모두 백두산 작업에 털어넣었다. 그러길 참 잘했다. 서발막대 휘둘러도 걸칠 데가 없어라. 아무리 더듬거려도 의지할 데가 없어라. - 패모 쓰러지면 기어가고 열심히 더 가다보면 덩굴손이 붙들 데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 패모 그래서 더 힘차게 자라 이쁘게 꽃 피우고 주렁진 열매는 더 탐스럽게 영글 것이다. - 패모 학연도 지연도 가진 돈도 없이 맨손으로 충무로에다 광고사진 스튜디오를 열었다. - 나 망하면 죽을테니까 산에도 집에도 가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했다. - 나 사진을 직업으로 한다는 언제나 황홀했던 자신감은 거기에 젊음도 꿈도 사랑도 모두 걸었다. - 나 애타게 팔을 휘젖는 젊은 패모를 사진찍으며 어려웠지만 신나던 시절의 나를 생각했다. 아마도 그때 누..

2019. 1. 3. 10:19

안승일의 우리동네 꽃동네 #51

연영초 | 당신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마음이 흐트러지면 바늘땀도 비뚤어진다고 했다. 사진도 그렇다. 셔터를 누를 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사진이 될 만한 꽃을 찾아 숲을 헤매다가 마음에 드는 꽃 한 송이라도 만나면 말을 건넨다. “당신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요?” 우리는 서로 외로움을 타기 때문이다. 잎이 넓고 꽃조차 우아한 연영초, 지독한 화장품 냄새를 피우지 않는 참한 얼굴. 전혀 꾸미거나 장식을 하지 않아 단아한 여인이 두 팔을 벌려 나를 맞아주는듯 하다. 그녀와의 첫번째 눈맞춤. 촬영이 끝나면 우리는 훨씬 더 친해져 있을 것이다. 연지 안 바른 당신 그 입술에 입맞추고 싶다. 나 어릴 적에 어른들이 그러셨다. 루즈를 진하게 바르면 “쥐 잡아먹었냐?”구.